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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Nov 10. 2015

내가 아는 왕따 이야기

안녕? 왕따 시키고 있니?


요즘 왕따 얘기가 쏠쏠하지. 내가 직접 본 왕따는 고등학교 2학년 때뿐이야. 그 외에는 카더라로 들었을 뿐이지.


우리 반에 꽤 예쁘장한 애가 있었는데, 이 예쁘장한 애가 공부도 잘했어. 11명인가 그룹같이 몰려 친구하던 애들 중의 한 명이었지. 남자애 하나가 전학을 왔다. 전학은 흔한 케이스가 아닌 학교였으니 다들 관심 있게 봤지.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그런 애였어. 예쁘장한 애와 그 남자애는 짝이 됐고, 예상한 것처럼 둘은 굉장히 친해져 버렸어. 그러자 나머지 10명이 질투하기 시작한 거야.


여자의 질투는 상상을 초월하지. 여자가 많은 곳이 견디기 힘든 건 다 이유가 있다. 결국 예쁘장한 애는  따돌림당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뭐였냐면, 처음에는 그 정도가 크게 심하지 않았는데 여자애 엄마가 이 10명을 불러다 놓고 화를 낸 게 화근이었어. 그래. 그건 문제라고 하기엔 어쩌면 당연한 걸 수도 있는데, 어쨌든 그 일이 있고 나서 이 10명은 예쁘장한 애한테 등을 돌렸어. 그 애를 괴롭히고 아무도 걔랑 못 놀도록 했지.


나는 그 모습을 이따금 지켜보고 있었어. 그때의 나는 말하지도 웃지도 않는 사람이어서 그냥 구경만 하는 방관자일 뿐이었어. 가장 나쁜 사람이었지. 그런데 걔랑 내가 짝이 된 거야. 나는 혼자 다니는 걸 아무렇지도  않아했는데, 얘는 그걸 좀 힘들어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같이 다녔어. 음악실을 가거나 체육을 하러 나가거나 밥 먹거나. 그랬더니 어느 날 수업시간에 쪽지가 왔다. 얘랑 계속 그렇게 같이 다니면 재미없을 줄 알라는 얘기였지. 그냥 그대로 구겨서 버렸어.


그런데 난 말이지, 인기가 제법 있었어. 그런 거 있잖아, 키 크고 커트 머리에 호리호리한 보이시 한 여자 선배, 후배, 동창. 간식거리나 선물, 편지를 제법 받았었지. 그래서 걔들은 그 후에도 몇 번 협박 아닌 협박을 했는데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고, 내 주변에 흔히 말하는 "쉴드"같은 게 있어버리니까 사실상 나를 어쩌지 못하고, 내가 있을 때는 얘한테 어쩌지를 못하더라. 우스웠지. 그 뭣도 아닌 비리비리함이란.


그리고 내가 얘랑 어울리니까 그 10명을 제외한 다른 애들이 얘한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거야. 조금씩 조금씩 얘랑 말을 하고 놀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얘는 다른 친구들이 생겼고, 나랑은 짝이 바뀌면서 멀어졌다. 멀어졌다기보다는 얘가 다시 자기 자리를 찾은 거지. 나는 다시 혼자 다니거나 따라오는 애들과 다니거나 했으니 상관없었어. 졸업하고 나서 딱히 내가 연락하는 타입도 아니고 이래저래 연락이 끊겨버렸어.


그렇게 그랬던 것도 잊고 있었는데 얘를 어디서 다시 만날 줄 알아? 내 첫사랑의 결혼식이었어. 신부의 친구더라. 웃겼지. 아주 웃겼어.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하고 수년만에 다시 만났는데 서로 바쁘다 보니 간간이 문자나  주고받는 사이가 됐어.


걔는 간호사가 됐더라고. 그래서 언니가 뇌수술을 받게 됐을 때, 얘가 다 도와줬어.


이런 말 아나? 병원에서 청소하는 사람이라도 알아두면 나중에 도움된다는 말. 뇌병동 간호사가 된 얘는 알아서 이것저것 알아봐주고, 병원 소개, 의사선생님 소개, 다른 병원의 아는 간호사들에게 전화 걸어 부탁하기, 간병인 구하는 것 까지 세세한 것들을 다 도와줬어. 나중에 재활치료 1차 받을 때는 얘가 있는 병원으로 갔는데, 얘가 거의 상주해가며 돌봐줬어.


매번 볼 때마다 고맙다고 하는 나한테 얘가 그러더라. 자기는 언제나 그때를 생각하며 나를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있었데. 죽고 싶었었는데 학교 그만 두고 싶었는데 괴로웠는데 너무너무 고마워서 잊을 수가 없데. 그 얘기 듣고 난 미안했어.


사실 나는 한 게 없거든. 오히려 구경꾼이었지. 얘가 내 짝이 안되었다면 계속 그랬을 거야. 그래도 이 예쁘장한 아이가 죽지 않고 학교를 그만 두지 않고 다시 친구를 만들어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해 대학을 가고 간호사가 되어 이렇게 뇌병동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왜 그렇게 슬프면서 기뻤을까.


왕따 그런 거 하지 마. 우쭐한 마음에 혹은 열등감에 다른 사람을 아무렇게나 할 때 느끼는 쾌락은 사실상 본능에 가깝지만, 그 쾌락은 너를 갉아먹는 쾌락이지 생산성 있는 쾌락이 아니야. 본능에 충실한 삶도 물론 나쁘지 않지만, 그런 잘못된 본능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라고 교육이란 걸 받는 거다. 뭐라고 백번 말해도 못 알아먹겠지만.


왕따 당하는 사람은 이유가 없어. 왕따 당하는 거랑 착한 거랑은 상관없어. 착하지 않아도 당한다. 예뻐도 당하고 못생겨도 당한다. 그냥 왕따 당하는 거지. 재수 없이 걸려서 표적이 되는  것뿐이야. 이판사판 맞짱 뜨지 왜 당하고 있어-라고들 말하더라. 하지만 왕따를 하는 사람과 왕따를 당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구조가 다른 것 같더라. 당하는 사람은 가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볼 수 있다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거야. 졸아서 그런 게 아니라 교육을 받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거지. 그런데 그게 자꾸 압박이 가해지고 패턴이 되고 생활이 되니까 짓눌려 버리는 거야. 피폐해지는 거지.


그냥 맹목적으로 싫어서 왕따의 대상이 되는 거니까, 왕따 당하는 거에 이유 있다고 말하지 말자. 나쁜 짓은 하는 사람이 잘못된 거다. 무슨 이유로  합리화시키고 싶어서 몸부림을 쳐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유린할 권리는 없다. 이렇게 말하는 건 꽤나 웃기지만, 저 친구가 나를 못 만나서 왕따를 계속 당하다가 죽거나 학교를 그만 두거나 영혼이 망가져 버렸거나 했다고 치자. 그러면 저 친구가 지금 있는 자리는 공석이겠지. 뇌병동의 수 많은 환자들과 의사들은 실력 좋은 저 친구를 만날 수가 없는 거다. 그렇게 퍼지는 나비효과 같은 거  생각해 본 적 있냐. 물론 갉아 먹히는지도 모르고 잘난 맛에 얻는 쾌락에 생각을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냥 관전하는 것도 나쁜 거다. 물론 나도 관전꾼이었다. 그래서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팔 걷어 붙이고 나서 주면 좋지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지 않나 싶다. 동조하지만 말자.  보일 때 만큼이라도 못 본 척 하지 말자. 일본 드라마나 영화 보면 그러다가 다음 타깃이 되기도 하더라만, 그래도 못 본 척은 하지 말자. 곁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제대로 봐주고 함께 하고 있을 때 최소한 영혼은 망가지지 않더라.


결국은 사람이 사람을 망치고,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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