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미지수도 함께 풀어 간다면,
<미지의 서울>은 "회복"이라는 말조차 낯설 만큼 오랫동안 아파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가 특별했던 이유는 그 회복이 어떤 전환의 기적이 아니라 사람을 곁에 두고 서로를 바라봐 주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단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미지'라는 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의 중심에 선 드라마다. 단순히 이름만 건 것이 아니라 "세상의 미지수처럼" 누구나 품고 있는 상처와 유예된 감정을 상징하는 인물이 '미지'였다. 사실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것은 <오월의 청춘> 작가님이 좋아서 그 결, 그 조용하고 단단한 감정선을 다시 느껴 보고 싶어서였는데, 역시나 등장인물 모두에게 할애된 서사들이 나의 감정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등장인물 중 누구 하나도 온전한 사람은 없었다. 누구 하나 정상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사회의 틀 안에 있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모두 제각각의 결핍과 상처, 고립의 역사를 안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 속 연대는 일방적이지 않다. 누군가가 누군가보다 강하고 약해서 생기는 위계적 연대는 없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이는 마음. <미지의 서울>은 그 점에서 매우 세련된 서사적 결을 갖고 있다.
내가 특히 깊이 공감했던 인물은 모두가 그러했겠지만 '미지'였다. '미지'는 건강한 사람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존재적으로도 중심이 단단한 사람이다. 다만 그 중심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번데기의 시간을 오래 거쳤다. 그런데 그 시간을 무사히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녀가 누군가의 곁이 되어 주고, 누군가가 그녀 곁에 있어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지'는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미래'가 곁에 있었고, '호수', '경구'가 있었고 엄마와 할머니가 있었으니까. '미지'는 '호수'와 있을 때 행복했겠지만, 어쩐지 난 몇 컷 없던 '경구'와 함께 있을 때 '미지' 씬들이 좋았다. 그 순간의 '미지'는 가장 진짜였다. 그만큼 '경구'가 좋은 사람이었을 테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듬어 주고, 내가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게 해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미래'는 '미지'와는 또 다른 결의 인물이었다. 그녀는 오랜 병약함과 불안정한 가족관계 속에서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겠다"라는 태도로 스스로를 지워버린 인물이다. 누군가에게 더 이상 의지하는 것에 부담감을 갖고 있었기에 늘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미지'가 있었다. 건강하고 단단한, 자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절대 변하지 않을 사람이. 그래서 '미래'는 천천히 무너질 만큼 무너졌다가 회복한다. '미지'의 '미래'는 그렇게 복구된다. 말 그대로 누가 누구를 고쳤다기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 조금씩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 '세진'이라는 사람이 있다. 등장인물 중 내가 원하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어른의 위로를 할 줄 알던 사람.
드라마를 보며 내게도 '세진'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말 한마디에 온기를 담을 줄 알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면서 곁에 있어줄 줄 아는 사람. '미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기다려 주는 '세진'의 태도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필요한 것이다. 그는 부유했고, 대부분의 것을 갖췄지만, 그 조건을 내세우거나 그것으로 상대를 누르지 않았다. 그건 그저 있으니까 좋은 하나의 옵션일 뿐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세진'은 자신의 조건으로 위계를 만들지 않는다. 그것이 좋았다. 항상 자신과 상대를 같은 선상에 두고 지켜 봐주는 사람. 눈이 좋은 사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드라마를 <나의 아저씨>와 비교하게 됐다. 어떤 결도 비슷하지 않았지만, 두 드라마는 내게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해줬다. "사람이란 누구에게도 해답이 되어 주지 않지만,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 서로를 살게 만든다."라는 이야기. 다만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 평안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어 그녀에 대한 염려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었다면, '미래'와 '미지'는 분명 평안에 이른 얼굴이었다. 완벽한 안식은 아닐지라도 더는 자신을 다그치거나 세상을 의심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안정을 얻었다는 얼굴이었다. 더 이상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나까지 평안해지는, 참 귀한 결말이다.
<미지의 서울>은 누군가를 돕거나 구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은 그냥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아주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아주 오래 머물렀다.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고,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지 못했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난 뒤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누구나 정답이 아니고,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 사는 거겠지." 하는 생각. 그렇게 나도 조금은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