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트

리듬을 붕괴시켜 관객의 감상 기준을 실험하는 영화

by MITCH


<시라트>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들로 인해, 이 영화가 나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어떤 세계관을 드러낼지, 어디까지 밀어붙일지를 계속해서 예측하게 만든다. 사막 한가운데서 열리는 레이브 파티, 딸을 찾기 위해 그곳에 찾아온 부자, 파티 그룹과의 동행, 서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동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생기는 느슨한 동지감. 음악과 이동이 반복되면서 영화는 분명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건 로드무비 같고, 공동체 영화 같고, 무언가를 향해가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목적은 분명하고, 인물의 감정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든 설명과 정리를 제공할 거라 믿게 된다.



그러다 첫 사고를 맞이하며, 이제 영화가 다른 단계로 넘어갈거라고, 이 비극이 어떤 의미를 열어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기대를 확장하지 않는다. 리듬은 바뀌지 않고, 새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깨진 상태로 그냥 방치된다. 이후의 전개는 점점 더 친절함을 거부한다. 지뢰밭, 예고 없는 죽음, 러시안 룰렛같은 선택들, 아무 감정적 보상도 없는 구조. 이 영화는 끝내 감정도, 의미도, 판단도 안전하게 내려놓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감정은 명확한 결론이 아니라 물음표에 가깝다. 다만 그것은 부정의 물음표는 아니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 하나의 실험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야기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장치에 가깝고, 관객이 영화를 읽는 습관과 리듬을 흔들기 위해 설계된 도구처럼 기능한다. 딸을 찾는 설정도, 공동체도, 여러가지 암시들 역시 관객의 자동 반응을 유도하는 스위치에 가깝다. 영화는 그 스위치를 눌러 놓고, 관객이 익숙한 박자로 감상을 시작하는 순간 그 리듬을 끊어버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상징을 숨긴 영화도, 의미를 풀어야 하는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의미를 찾으려는 관객의 태도 자체를 무력화 하는 영화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두고 잘 만든 영화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조건부로 가능하다. 이 리듬 붕괴가 의도된 설계였고, 그 결과로 실제로 관객이 흔들렸다면, 이 실험은 성공한 셈이다. 다만 그 성공이 모든 관객에게 즐거운 경험일지는 모르겠다. <시라트>는 감동을 주지 않아도 되고,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며, 호감을 얻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다. 이 영화는 이해되기 위해 존재하기보다, 상징을 찾고 의미를 정리하려는 관객의 습관과 감상 기준을 점검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실험에 가깝다. 그래서 이 영화는 관객을 흔들어 놓는 데 더 관심이 있고, 그만큼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친절함은 우연이나 방임이 아니라 끝까지 유지 된 선택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좋다고 말하기도, 싫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했는지 보다, 이 영화를 보며 내가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을 놓쳤는지가 훨씬 더 또렷하게 남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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