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섞이지 못한 사극과 인간극

by MITCH

<왕과 사는 남자>에 나오는 배우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너무 마음에 든다. '단종'이라는 인물을 다루는 사극은 원래 감정이 과잉으로 흐르기 쉬운데, 이 영화는 의외로 그 방향을 택하지 않는다. 왕의 비극을 거대한 역사극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유배지라는 작은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관계에 집중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방향도 꽤 마음에 든다. '단종'을 상징으로 소비하지 않고, '엄흥도'라는 인물을 통해 한 인간으로 복원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유배지에서 만난 왕과 백성이 관계를 맺고, 사건을 겪고, 결국 비극으로 향한다는 기본 구도 자체도 이미 강렬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될 영화"처럼 보인다.


배우들은 그 가능성을 거의 현실로 만든다. 특히 '박지훈'은 기대 이상으로 놀라웠다. '단종'이라는 인물은 자칫하면 음울하고 유약하게만 보이거나 지나치게 의연한 상징으로 굳어버릴 수 있는데, '박지훈'은 그 간극을 잘 피해 간다. 초반 유배지에서 분노라는 감정을 터뜨릴 때도 단순한 화가 아니라 억울함과 공포, 자존심과 모멸감이 섞인 떨림이 얼굴 전체에 퍼져 있었고, 마지막에 스스로의 죽음을 부탁하는 장면에서는 왕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인간적인 무너짐 속에서도 스스로 선택한 결단처럼 보이게 만든다. '유해진'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축임은 분명하지만, '박지훈'이 그 옆에서 밀리지 않고 끝까지 균형을 맞췄다. '유지태' 역시 말할 필요가 없다. 그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장면의 공기가 바뀌고, 목소리만으로 권력의 압박이 형성된다. 조연들까지 발성과 톤이 단단해 사극 특유의 언어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점도 장점이다. 이름 모를 역할조차 사극 속의 사람처럼 들린다는 건, 적어도 배우 디렉팅과 캐스팅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연출에서 무너진다. 조명과 색감은 공간을 살리지 못하고, 세트와 로케이션은 아름답지만 영화적 긴장으로 변환되지 않는다. 카메라 구도와 동선은 인물과 공간의 관계를 설계하기보다 단순히 장면을 전달하는 데 그치고, 편집 리듬은 감정이 축적되어야 할 구간에서 호흡을 만들지 못한다. 특히 밤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들은 영화 전체의 약점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어둠이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어둠으로 남고, 조명이 공간감을 만들지 못해 인물들이 배경에서 분리되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배지라는 설정이 가진 고립감과 공기의 무게가 화면 안에 쌓이지 않으니, 자꾸 한 번씩 튕겨 나오게 된다.


때문에 작품은 톤에서도 흔들린다. 따뜻하고 해학적인 장면과 비극적이고 엄중한 장면이 교차하는데, 두 세계가 하나로 섞이기보다는 따로 달리는 인상이 강하다. 웃다가도 감정이 끊기고 비극 지점에 도착해서는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감정을 요구받는다. 다행히 그 감정은 배우들의 연기로 어느 정도 보상받지만, 결국 인물들의 관계가 화면 속에서 숙성되지 못하니 감정이 결정적으로 폭발해야 할 순간에도 끝까지 터지지 못한다.


그래서 <자산어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유배지에서 권력 밖으로 밀려난 인물이 백성과 만나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시대의 폭력 속에서 마무리된다는 구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자산어보>가 공간과 시간을 통해 관계를 쌓아 올린 영화라면 <왕과 사는 남자>는 그 관계를 쌓아야 할 순간마다 연출이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 <왕과 사는 남자>는 좋은 영화가 될 뻔한 영화다. 배우들은 이미 훌륭하고, 이야기의 뼈대도 단단하다. 그런데 영화적 언어가 그 의도를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는 좋으면서도 아쉽고, 울릴 수 있던 장면들을 충분히 울리지 못해 아쉽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소재를 사극을 잘하는 감독이 다시 잡아 제대로 만든다면 어땠을까, 어떤 사극 때깔이 나와줬을까 너무 궁금했다. <자산어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훨씬 더 울리는 작품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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