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보다 무서운 현실의 모순과 불완전함
영화의 분위기는 "귀신이 나오는 집"이 아니라 "생활이 붕괴된 집"에 가깝다. '라모나'는 무너졌지만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무너질 수가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가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감정을 폭발시킨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가족이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보다 서로를 지치게 만드는 순간을 더 많이 보여준다. 즉 이 영화는 가족을 따뜻한 울타리로 그리지 않는다. 가족은 사랑이지만 동시에 짐이고,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
마당에 앉아 있는 검은 상복의 여자는 문을 잠그고 창문을 닫아도 해결되지 않는 공포다. 그 존재는 외부의 악령이 아니라 '라모나'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현실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내면의 괴물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슬퍼할 자격이 없다는 감각,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이 함께 끼어들어 외면하고 싶은 상태. 상실과 죄책감이 결합하면 애도는 치유가 아니라 처벌이 된다.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충동,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아이들 때문에 더 숨 막히는 현실, 그 복합적인 감정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만들어낸 부산물이 마당의 여자다. 이 점에서 <우먼 인 더 야드>는 <바바둑>에 굉장히 가깝다. <바바둑>이 우울은 퇴치하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면, 이 영화는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여기서 괴물은 분노보다 죄책감에 가까운 침잠을 다룬다. '라모나'는 서서히 잠식된다. 작은 행동들이 흐트러지고 판단이 흐려지고 감정이 둔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사라져야 한다는 끔찍하게 비논리적은 결론에 도달한다.
아쉽게도 영화는 몹시 산만하다. 상징은 선명하고, 분위기는 꾸준히 불길하지만, 캐릭터들의 동선과 장면의 리듬이 정리되지 않는다. 감정이 누적되며 무너지는 과정이 쌓여야 하는데, 각 인물의 묘사나 관계성이 충분히 다져지지 못한다. 그래서 인물들이 무너지는 사람이라기보다 그저 정신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 결과 인물들의 행동이 설득되기보다 거리감으로 남는다. 상징적 심리 공포로는 흥미롭지만, 드라마의 밀도는 일정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남기는 인상은 강하다. 이 영화가 던지는 공포는 악령이 아니라, 무너진 사람이 다시 살아야 한다는 현실 자체다.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남는 건 슬픔이 아니라 일상이고, 일상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결말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바둑>처럼 공존의 결말일 수도 있고, <인셉션>처럼 현실이 맞는 건가 싶은 불안의 결말일 수도 있다. 영화는 그 경계를 일부러 확정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라모나'를 무너뜨린 것은 마당의 여자가 아니라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현실의 무게였다는 점이다.
결국 이 영화의 공포는 누가 죽고 누가 쫓기느냐가 아니라, 우울과 자살 충동이 얼마나 집요하게 일상을 잠식하는지에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초자연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내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가 하는 감정의 메커니즘이 만들어낸 시각적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