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머시 : 90분

이 시스템이 도입된 사회는 이미 망한 사회 아닌가?

by MITCH


<노 머시 : 90분>은 AI 판사라는 소재를 "현실 비판"으로 끝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이 영화는 그 설정을 하나의 장치로 소비한다. 말하자면 "AI 재판이 왜 위험한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AI 재판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긴박한 스릴러가 가능할까"를 밀어붙이는 영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생각할 틈 없이 몰아치는 구조다. 보통 디스토피아 SF는 설명이 많아지고, 설정을 보여주려다 리듬이 늘어진다. 그런데 <노 머시 : 90분>은 반대로 정보가 폭탄처럼 쏟아지고, 주인공은 그걸 따라잡느라 숨 돌릴 틈이 없다. 상황을 이해하는 순간 이미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 있고, 영화는 그 속도감 자체를 스릴로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재판 영화라기보다 게임에 가깝다. 무죄 입증이라는 목표가 주어지고, 제한 시간이 걸리고, 단서를 찾고, 증거를 조합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한다. 현실적인 재판을 기대하면 허술해 보이겠지만, 장르 쪽으로는 오히려 이 방식이 영화에 힘을 준다. 법정 드라마가 아니라 서바이벌 스릴러를 보고 있다는 감각이 끝까지 유지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법 시스템을 논쟁의 장으로 만들지 않고, 타이머가 돌아가는 방 탈출 공간으로 바꾼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재판은 절차가 아니라 이벤트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워낙 설정 자체가 강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시스템의 구조와 사회적 배경에 대해 궁금함이 커지는데, 영화는 거기까지 파고들지 않는다. 이 시스템을 확장해서 보여주려면 결국 사회 전체를 다뤄야 하고, 그 순간 영화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적인 공포를 건드린다. 요즘 사회는 설명보다 수치에 쉽게 설득된다. 증거보다는 확률이, 논리보다는 점수가 사람을 납득시키는 시대다. 유죄 확률 97%라는 숫자가 뜨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무죄 추정의 원칙을 떠올리지 않는다. 이미 결론이 났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그 사고방식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몰아가는지 보여준다. 꽤 현실적인 공포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공포를 확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 설정을 최대한 가볍게 쓰며, 액션과 추적, 반전과 카운트다운으로 밀어붙인다. 그래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깊지 않다. 깊지 않기 때문에 속도는 유지된다. 이건 영화의 실패라기보다 의도된 선택에 가깝다.



결국 <노 머시 : 90분>은 AI 판사 도입의 윤리를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가 진짜로 말하는 건 다른 것이다. 현대 사회가 얼마나 쉽게 시스템이 정한 결과를 정의로 착각하는지, 그리고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숫자에 확신을 가져버리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완성도 높은 디스토피아라기보다, 디스토피아의 외피를 쓴 스릴러에 가깝다. 설정은 허술해도, 그 허술함을 덮어버릴 만큼 리듬이 빠르고, 영화는 끝까지 몰아붙인다. 무겁게 생각하면 구멍이 보이지만, 가볍게 타면 제법 쾌감이 있다. 설득력의 영화가 아니라 속도의 영화였고, 그 속도 덕분에 요즘 잘 안 나오는 스타일의 팝콘 스릴러로 살아남는다.





팟빵 https://www.podbbang.com/channels/8398/episodes/25242060


유튜브 https://youtu.be/L2S3n7EhVh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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