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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Nov 30. 2015

춘희막이 (2015)

난 돈 같은 건 만지지 않아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날 낳아준 우리 엄마 말이야. 그 엄마가 나를 이 집에 보내면서 그렇게 말했어. 그 집에 가거들랑 돈이고 쌀이고 옷이고 어떤 것도 욕심 내지 말고 만지지 말라고. 내가 반푼이지만요, 엄마 말은 또 잘 들었어요. 그런 말을 듣고 이 집에 왔는데 겁이 나는 거야. 내게 남편이라는 남자는 있는데, 내가 시집을 온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었던 거야. 내 남편에게 부인이 있었거든요. 이상하다. 이 남자는 내 남편이라고 했는데 왜지? 왜지? 이랬지. 원하는 대로 아들도 낳아주고 했지만 무서웠어요. 나는 반푼이니까 쓸모가 없으니까 그저 아들만 낳아주면 쫓아낼 줄 알았어. 엄마가 쫓겨나지 말라고 그랬는데, 난 쫓겨날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그래서 계속 웃었지요. 웃으면 좀 예쁘게 봐줄까봐서. 그땐 몰랐지, 남편의 부인이 왜 그렇게 내게 무섭게 굴었는지. 그런데 말이야, 남편의 부인이 나를 내쫓지 않더라고요. 그게 벌써 46년이네..


남편은  오래전에 하늘로 가 버렸고, 내가 낳았지만 내가 키우지 못했던 내 아이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 있고, 나는 할매가 된 내 남편의 부인과 살고 있다오. 그 할매가 나를 지금까지 끼고 있어줘요. 잘해주냐고? 엄청 구박해요. 말도 막 하고. 이 년 저 년. 뭐할 년. 뭐할 년. 그런데 이젠 알아요. 할매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나도 힘들게 산 팔자지만, 할매도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렇게라도 막 말해서 내게 분풀이를 하는 거예요. 하지만 나를 한 번도 막대하거나 홀대하지 않았어요. 욕도 하고 구박도 하지만 항상 나를 챙겨준다오. 내겐 할매가 남편이고 엄마고 언니고 친구고 그래요. 그래서 나는 아직도 할매한테 버려지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다우.  상상할 수 없고 말고. 그래서 아직도 돈 근처에도 가지 않아요. 할매도 지금까지도 내게 돈 한 푼 맡기질 않지만, 나도 돈 근처에도 안가. 돈 될만한 거 돈이 있을만한 곳. 난 안 간다고. 돈이 없어지면 할매가 날 의심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더 안 가요. 혹시라도 할매가 나를 내치면 어째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욕심만 내지 않으면 된다고. 그래서 할매가 자꾸 돈 셈 하는 걸 가르쳐 주려고 하고, 딸이 와서 돈 셈 하는 걸 가르쳐 주려고 "만원 해봐. 만. 원." 이러고 말을 시키는데 나는 돈에 대해서라면 입도 떼고 싶지가 않아 벙어리인 척 해요. 내가 반푼이지만 뭘 안 해야 되는지 알고 있어요.


난 그냥 할매 곁에 있고 싶어요. 어디든 할매랑 같이 다닐 거야.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내가 먼저 가든 할매가 먼저 가든 꼭 같이 있을 거라고. 그럴 거야. 그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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