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이면 자살할 수 없는 것인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두 남자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자살에 관한 이야기였다. 근래 자살한 서울대생의 이야기를 하며, 내가 서울대생이면 자살 안 한다 미쳤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 서울대생이면 자살할 수도 없는 거구나.
우울증이 도발되는 경우,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 평소와 다르게 세상을 보게 되면 그 이질감이 얼마나 무서운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그 두려움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게 자살시도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안 걸던 말을 걸어보는 것도 있고, 그저 틀어 박혀 질질 짜며 울거나 안 내던 화를 내거나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냥 "나 좀 도와줘"라고 깔끔하게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 말을 해야 하는 타이밍인지 스스로조차 가늠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런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는지조차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이런 행동을 한다면, 모르는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부분은 몰라서 못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알지만 귀찮거나 찌질거리는 게 싫어서, 내 기분까지 더러워질까 봐 알면서도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한번 받아주면 끝이 없는 경우도 있기도 하지만, 제발 무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잡아 보는 줄이 당신일 수 있는 거니까. 원치 않게도 그 줄로 선택받은 당신은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사람 한 번 살리고 업보 한번 털어낸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성심성의껏 이야기하고 해결해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고 등 한번 토닥이며 쓸어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그 시점에도 아무 이야기나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관심병자? 그런 사람이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관심병자가 아니라 관찰 병자다.
우울증이나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가 사람이라는 인지도 제대로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니 최소한의 인정을 베풀어서라도 "너는 사람이다, 너는 사람이야-"를 알려주는 시스템이나 주변 사람들이 있다면 훨씬 좋을 거란 얘기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서울대생이기 때문에 자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에 웃음이 났다. 물론 자살이라는 것은 가급적 막아야 하는 것이지만 내가 서울대생이기 때문에 죽을 권리조차 마음대로 없다는 것인가. 그리고 이건 바꿔 말하면 서울대생이건 아니건 곁에 사람들이 있건 없건 금수저든 아니든 환경이 어떻든 어떤 사족들을 달고 있는 인생들이든 자신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어 더 이상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도 자신감도 없다 여겨지면 세상을 등지는 데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뭘 하는 사람이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했던 사람이냐는 거다.
몸이 아픈 사람은 걱정과 염려를 받는데, 정신이 아픈 사람은 손가락질을 받게 되어 쉬쉬해야만 하는 이 환경도 바뀌어야 한다. 몸이 아픈 것은 최소한 겉으로 티라도 나는데, 정신이 아픈 건 그렇지 못하니까 정신이 아플수록 약할수록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주변에 알리고, 주변도 잘 관찰하며 파악해주고 하며 함께 치료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데, 이 사회는 아직 그런 것들이 용인되지 않는다.
누가 무슨 이유로 어떤 방법으로 자살을 했는지보다 왜 자살에 이르게 되었는지, 자살 전 어떤 생각과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내 주변에 유사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는지, 혹시 내게 SOS를 요청하는 일은 없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발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