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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Jan 24. 2016

검은 사제들 (2015)

시베리아 벌판보다 더 추웠던 어떤 겨울의 부마자를 위하여



시베리아보다 춥다 했던가. 악령 들기 참 좋은 날이었다. 세탁기를 숙주로 삼은 악령들을 발견한 것은 한창 한파가 불어닥치던 그 날의 아침이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수도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하지만 보일러 온수의 찢긴 보온재 사이로 스며든 악령은 급수호스와 배수호스로 도망을 쳤다.


급수호스의 악령은 급이 낮은 악령이었다. 큰 반항 없이 단 한 번의 구마 의식으로 별무리 없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문제는 배수 호스. 배수 호스에 있던 악령은 장미십자회에서도 쫓고 있는 12 형상 중 하나. 몇 시간 동안이나 나를 조롱하던 마귀였다.


이 동네의 검은 사제들은 오늘을 넘겨서는 안된다며 구마 의식에 들어갔다. 싱크대에 뜨거운 성수를 들이 붓고 부마자 호스를 담가 구마 의식을 치르고 호스의 주둥이에 뜨거운 성수를 들이 부으며 꾸억 꾸억 거리는 이 악령들을 몇 차례에 걸쳐 뽑아냈다. 악령을 모두 해치웠다고 생각하던 그 마지막 순간 발악을 하며  뛰쳐나오려는 악령까지 잡아 내어 처리함으로써 부마자 호스는 평범한 세탁기 배수호스로 돌아왔다. 그렇게 현재 악령에게서 풀려난 호스는 현재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빨래를 가열차게 돕고 있는 중.


부마자였던 호스는 이 악령이 다른 숙주로 옮기지 못하도록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호스야. 네가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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