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의 함정
자발적 가난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빡세고 힘들게 돈이나 회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적당한 수준으로 다운그레이드 하여 돈이나 회사가 아니라 나, 가족, 주변에 할애하는 시간을 가져라-의 이야기였다. 이 기사를 보고 웃음이 났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자발적 가난을 자청하는 이 중에 가난한 이는 없었다. 물론 그 표현은 상대적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가난이란 단어를 자발적이란 단어와 붙인다는 것부터가 함정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자발적 가난이란 것의 함정은 말했듯 자발적이란 단어다. 이미 가난하다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할 수가 없다. 이미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에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 할 수가 있다는 것인데, 가난하고 싶지 않아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있어 이 표현이 얼마나 무례한가 싶다.
이 기사에 나오는 자발적 가난이란 용어처럼 나도 많이 벌고 많이 일하는 것에 굴레에 갇혀 있다가 적게 벌더라도 내 시간을 갖고 싶다며 50% 이상의 연봉을 다운그레이드 하고 일 하는 시간 역시 50% 이상을 줄이고 살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된 것에 나는 만족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가난은 가난이다. 갖고 있던 돈이 소비되고, 비빌 언덕 같은 것은 없는 내가 자발적인 아닌 현실의 가난을 맞이하게 됐을 때 가난은 가난이구나 라는 것을 떨칠 수가 없게 됐다.
축적해둔 것이나 기본적으로 뭔가 있지 않다면, 요컨대 자발적 가난을 선택해도 무언가의 기본 이상은 보장될 때 자발적 가난은 이루어진다. 자발적 가난 기사에 나왔던 그것은 자발적 가난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미니멀한 생활에 맞춘 계산된 경제활동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