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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Feb 01. 2016

삼십 대의 후반을 시작하며,

아직도 숨은 쉬고 있다.

내 나이 벌써 삼십 대 후반을 시작하기 시작하며, 이 나이에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난 이 나이쯤 되면 응달이 조금 있는 창가 앞에 테이블을 놓고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소설 나부랭이를 쓰다가 장면 장면에서 공상이나 떨며  낄낄거리고 웃으며 잔망이나 떨 줄 알았다. 그러다 "선생님, 상 받으러 오세요."라는 전화를 받으면, 너스레를 떨며 '한번 나가줄까?'하고 상을 받으러 나가 "땡큐!"라며 쿨하게 시상 소감을 던지는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대낮의 티타임에서 좋아하는 음악이나 틀어놓고 비슷한 부류들끼리 군데군데 앉아 각자의 헛소리들이나 늘어놓고 난 그 사이에서 "그거 좋은 소재로구나!"하며 미친 듯 메모나 하고 있는 그런 일들이 생활일 줄 알았다.


아니.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이 나이까지 숨 쉬고 살아 있을 줄 몰랐다. 세기말에 이르러 어둠이 가득 서린 영혼들끼리 영혼의 친구랍시고 모여 앉아 시시껄렁하게 나누던 이야기 중에도 "넌 언제 죽을 거냐?"가 있었다. 그러면 서로 힐끔 거리다가 "설마 우리가 서른까지 살겠냐?"라고 낄낄 거렸었다.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멀게만 느껴져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때 참으로 살아간다는 게, 숨을 쉬고 있다는 게 힘든 청춘의 도입부였다.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던 세 영혼은 죽을 듯 죽지 않으면서 삼십 대를 맞이 했고, 또 그렇게 삼십 대 후반을 시작하게 됐다. 굉장히 잘 살아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설마 우리가 마흔까지 살겠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아직도 숨은 쉬고 있다. 사십 대까지 무사히 숨을 쉴 수 있다면, 아마도 지금 이 글과 비슷한 글을 또 쓰게 될 텐데 그때는 좀 더 재밌어진 글이  튀어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글의 말미에는 "사십 대까지 살아보니 괜찮네?"라고 적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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