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굽는 건축가 Nov 01. 2021

건축가의 작업실에서 한 달

건축가의 한 달을 쭈욱 풀어보면
건축주를 만나 음식이 만들어지는 장소, 책 읽기 좋은 아지트 같은 꿍꿍이 들을 이야기 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식구들을 만나, 사람으로 치자면 머리에 해당하는 지붕선, 눈썹 같은 처마, 눈동자 같은 창문을 이야기하고, 디자인을 맡은 ‘오래된 우리 스텝‘들과는 보이는 풍경, 들어오는 바람, 햇살 샤워를 할 수 있는 구석구석 머릿속 현실을 종이 위에서는 1:100의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아내와 어린이에게 미주알고주알 수근 수근 이야기한다.


나의 일주일을 돌아보면 자리에 앉아서 진지하게 일하는 시간보다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많다. 
내가 앉아 있는 시간은 그럼 언제지?
이른 아침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직접 만든 발효빵을 아침 도시락으로 들고 사무실에 들어와 있는 시간이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나의 업무 효율성은 이른 아침에 비해 반이상 토막이 나는 느낌이 든다.
˝난 아침형 인간이 확실해˝하면서 확실성에 확신을 더하며 오늘 아침도 며칠 전에 구운 발효빵에 오디잼을 바르고, 수확이 끝나가는 끝물 포도를 도시락으로 싸서 사무실에 들어왔다.

발효빵에는 야채가 곁들여져야 퍽퍽하지 않다. 처음 발효빵 연수를 신청할 때 내 머릿속 풍경은 
˝내가 만든 빵은 촉촉하고 식감이 좋을 거야, ˝ 
연수를 마치고 알았다.
‘통밀을 100% 사용하는 발효빵은 결코 촉촉하지도 식감이 부드럽지도 않다 ‘ 
내가 만드는 빵들은 효모(enzyme)들이 24시간 이상 실컷 먹고 뱉어낸, 솔직히 표현하자면 효모들의 배설물을 먹고 있는 중이다.

발효빵과 건축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몇 가지를 손꼽아 보면 먼저 적절한 배합이 필요하다. 통밀가루, 발효종 효모 덩어리, 물, 소금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듯 건축물도 얼마의 비용과 크기, 용도를 무엇으로 할지에 따라서 각각의 배합의 정도가 다르다. 

두 번째, 배합 비율에 맞게 섞어 주는 것이다. 건축도 땅의 조건에 맞도록, 용도에 맞도록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1개의 조건에 백가지 경우의 수를 섞어 준다. 


세 번째, 자연 발효를 시작하면 충분히 반죽해서 질기가 생기도록 도와준다. 
건축도 기본 구성과 설계에 착수하면서 이런저런 방향을 수립하고 생각의 가지들이 쫄깃한 탄력이 생기도록 도와준다. 

네 번째, 배합과 효모가 만나 숙성되는 과정처럼 
건축주와 건축가들이 효모처럼 작동을 한다. 먹고 싸고, 스케치하고 버리고, 빵에 가스가 생겨 터지듯이 건축주들과 논쟁을 하면서

˝아 건축주만 없다면˝이라는 말도 안 되는 푸념을 던진다. 
이쯤 되면 돌아버린 정신이 다시 돌아온다. 

˝무슨 소리야 건축주가 없다는 이야기는 밀가루가 없는 빵인 셈이야! 우리 정신 좀 차리고 다시 숙성을 해보자고˝

무엇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골똘히 집중하다 보면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말 듯한 순간들이 허들처럼 서있다.
허들을 만날 때, 나만의 허들 넘기 방법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책을 보는 일이다. 

잠시 마음을 내리고 고민의 수위를 멈추고 책을 본다. 

오늘은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을 다시 들어본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그림책 작가들의 책 중에는 <목욕이 좋아> 같은 우리 아이가 읽은 책도 꽤 여럿 있다. 

작가들의 작업실에 내가 앉아있는 듯하다. ˝건축가 양반 나도 발효 중이야
발효빵처럼 말일세, 효모들이 잘 먹을 싸고 뱉을 수 있도록 온도 관리도 중요하다네,
자네는 혹시 온도관리를 슬쩍 놓친 것은 아닌가?

오늘 내 주변의 온도는 참 좋군. 수고하게나 난 마저 작업을 좀 해야겠어. 언제든 네 작업실로 찾아오게나
 발효가 잘 되도록 힌트를 줄게˝

나이가 지긋한 작가님이 나에게 힌트를 준다. 

˝음 온도였군, 분위기를 바꾸어 봐야겠어˝
책에서 잠시 쉬었다 갑니다. (2019년 10월 22일)


발효빵과 포도 도시락


매거진의 이전글 장미마을에 가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