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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Nov 01. 2021

아빠의 빵은 아침에 만날 수 있다.

10월 27일 2019년

톰의 정원은 오로지 한 밤중에만 만날 수 있다. 
자정을 넘긴 시간 그것도 우리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에만 정원 출입이 허용이 된다.

오늘 아침은 조금 분주하네요
지난 이틀간 숙성시킨 발효빵도 구워야 하고, 뒷마당에서 수확한 단호박과 어머니가 주신 마늘도 곁들인 간식으로 구워야 하거든요.
아침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편이어서 1분 1초를 아끼느라 어떨 때는 조급한 마음도 듭니다. 

그럴 때는 ˝천천히 해도 괜찮아 모두 다 나의 아침 시간이잖아˝ 라며 주문을 걸기도 하고요. 

˝이번에 만드는 빵은 무엇으로 하지?˝ 집안에 있는 재료들을 찾아봅니다. 제가 굽는 빵은 경험으로 보나 다양성으로 보나 집중하는 시간으로 보더라도 아마추어 세계의 초입에 있다고 하는 편이 어울릴 것 같아요

그래도 발효빵에 대한 저의 애정과 창조성은 중간 이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발효빵을 쉽게 구입해서 사 먹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더구나 제가 살고 있는 안성이라는 지역에서는 100% 발효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일까요?

저의 자부심은 바람이 잔뜩 들어 하늘로 날아가는 배부른 초록 풍선 같습니다.

빵의 종류가 결정되는 일은 밀의 종류, 수분율, 내용물이 빵을 분류하는 기준이 되더군요. 예를 들면 ˝꿀에 조린 생강을 넣은 땋은 모양의 농가 빵˝이라고 한다면, 제목만으로도 누구나 해석이 가능하답니다. 덤으로 입안에서 침이 도는 것은 누구나 비슷할 것 같고요. 풀어보자면 꿀에 조린 신선한 생강이 들어갈 것입니다. 생강은 뭉근히 끓이며, 꿀에 몇 시간 담가놓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상상이 가득하게 됩니다. 땋은 모양이라는 표현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어요. 빵을 땋을 수 있다는 것은 수분율이 높지 않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수분율이 높으면 손가락을 이용해서 빵에 모양을 주기가 쉽지 않거든요. 상대적으로 수분율이 60% 정도만 되어도 빵의 질기와 탄력이 있어서 퍼지지 않기 때문에 머리를 따듯이 땋아낼 수 있답니다. 

농가 빵이라는 글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은 순수 발효빵이라는 것이죠. 농가에서 상업용 이스트를 넣을 리는 없을 것 같네요. 

오늘 제가 만든 빵은 앉은뱅이 통밀 150g, 우리밀 통밀 50g, 천연발효종 100g, 물 130g, 밀기울 20g, 코코넛 조각 10g, 오트밀 10g, 바나나 20g을 넣어서 구운 빵입니다. 

뭐 이쯤 되면 빵 이름을 짓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 제가 한 번 지어 볼까요? 

‘코코넛 조각에 바나나와 오트밀을 넣어 48시간 발효한 빵‘ 이름이 조금 긴감이 있습니다. 줄여서 ‘바나나 통밀빵‘ 이 정도면 어떨까요? 

빵이 다 되었는지 오븐에서 삐삐 거리는 알람이 들리네요. 요 며칠 전 아내가 친구들과 만날 때, 발효빵을 한 덩어리 들고나갔다고 하는군요. 아내까지 모두 네 명이 모였는데 그중에 두 분이 앉은자리에서 빵을 모두 다 먹었다고 하네요. 이 말과 함께요
˝서울에서 사 먹는 발효빵보다 더 졸깃하고 식감이 있어, 맛있다. ˝ 아내의 말에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빵 드시고 싶으면 이야기해, 언제든 보급할 거니까˝^^  

오늘 아침은 일요일입니다. 
동네에서 아침 울력이 있는 날이죠. 새로 구운 ‘바나나 통밀빵‘을 들고 갈 생각을 하니 설레는군요. 
그제 ‘커페해피‘에서 보내준 ‘케냐 피베리‘원두를 내려 빵과 먹을 생각을 하니 아침이 행복해집니다. 

톰의 정원은 오직 한 밤중에만 만날 수 있어요. 
건축가의 빵 굽기는 오로지 아침 시간에만 이루어집니다. 아내와 딸이 잠든 이른 아침 시간이죠. 자면서 빵 굽는 냄새를 맡고 있겠지요?

딸은 커서 맛은 없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한 아빠의 빵 굽는 향을 기억에 간직하고 있을 거예요.
딸은 제 빵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주고 있거든요. 100점 중에 60점 정도면 맞을 거예요. 과락은 면한 점수죠 후후후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한 기술과 방대한 레시피를 전해주고 계시는 제프리 선생님 오늘도 빵을 구웠어요

언젠가 당신이 구운 빵 향기를 맡을 수 있겠지요?
오늘 빵의 향이 시큼하네요. 너무 많은 시간 발효를 시킨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바나나가 시큼한 산미를 보완해 줄 거예요 

오븐에서 빵을 꺼내러 그만 가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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