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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Nov 01. 2021

장미마을에 가는 날

2019년 11월 4일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마을이 필요하다 ‘는 이야기들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 말을 돌려서 이야기하자면 마을은 사람을 품는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마을‘의 의미를 경험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살고 있는 동네는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마을살이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한 달 전에 이웃마을에서 연락이 왔어요
˝11월 3일에 점심 초대할게요
동네 분들 모시고 오세요˝

우리 동네에서 차로 10분 거리이고, 산을 넘어 걸어가면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장미마을입니다. 
장미마을은 꽃을 많이 심고, 정원을 가꾸며 살고 있는 동네라서 붙은 이름입니다. 

학교 선생님, 정원사, 음악가도 있는 마을입니다. 
한 집 두 집 모이게 되면서 마을이 되고,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를 희망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딸아이는 이 마을의 음악가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더니 피아노 실력이 붙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지 자진해서 피아노를 배우러 다녀옵니다. 
덕분에 저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아이의 피아노를 핑계 삼아 장미마을에 가서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옵니다. 

우리 마을은 남쪽으로 조금 더 들어와서 자리 잡고 있는 들꽃마을입니다. 
우리 동네는 6개월을 기준으로 마을 살림 임원을 제비뽑기 합니다. 
지난 7월에 제비뽑기로 제가 마을 총무가 되고 옆집 누님은 회장이 되었습니다. 
6개월 임기라서 그런지 부담은 없지만
감투이다 보니 마을 통장관리를 하는 일부터 마을 길 청소 안내 같은 소소한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매월 넷째 주 오후 5시에 열리는 마을 정기 회의에서 장미마을이 점심을 초대한 이야기를 했고, 모두들 흔쾌히 다녀오기로 한 날이 11월 3일 오늘입니다. 

제가 글 초두에 이 시대에 어울리는 마을살이라고 했는데요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우리 동네나 장미마을이나 농사를 짓는 분들은 없습니다. 
대부분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역에서 활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농사 공동체를 지향하거나, 철저하게 생태적인 삶을 살자고 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냥 각자의 수준에 맞추어 공동체를 지향하거나, 환경적인 삶으로 가까이 가려고 할 뿐 구호를 외치거나 이래야 한다는 어떤 전제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아이들도 이런 어른들과 친하게 지냅니다.

초등생인 딸아이는 이웃집 누님 댁에 가면 거기서 밥도 먹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옵니다.
˝이모 몇 시에 집에 와요?, 나 거기서 놀고 있을게요˝
우리 아이가 어떻게 놀고 있는지는 이웃집 이모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가끔 사진도 보내주고요
우리 집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볼 때도 많습니다. 
가령 아이가 너무나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 같은 것이죠. 우리 부부가 받아주지 못하는 역할을 이웃집 형님과 누님들이 하고 계셔서 감사해요

마을은 아이를 기른다고 합니다. 저도 그 말에 공감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어른들을 연결시키고, 어른들은 텃밭으로 연결되고, 마을 길로 연결이 되고 있어요
오늘은 그 길을 따라서 장미마을에 다녀왔습니다.
단풍철이다 보니 산행으로 1시간 30분 동안 산길을 걸어 장미마을에 도착한 어른들과 아이들이 있고
장미마을에 미리 가서 같이 점심을 준비한 저 같은 사람들도 있어요

가을날 그냥 이렇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어 감사한 날들입니다. 
집과 건축을 이야기할 때 따뜻한 장소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따뜻한 곳을 만들기 위해 온실도 만들고 남향의 거실도 둡니다. 벽난로는 겨울에 빼놓을 수 없는 따뜻함의 대명사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건축가들도 잘 빼먹는 것이 하나 있어요
이웃에 대한 이야기들이죠
따뜻한 이웃들이 있으면 
비록 작은 집에 이렇다 할 살림이 없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리 중요한 일들이 아니어도
내 존재가 이웃들 사이에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뜻한 온실도 두고, 남향으로 거실도 두고, 벽난로도 두고
그리고 이웃들과 왕래할 수 있는 그런 장치도 하나씩은 건축가가 고민하면 좋겠어요
그런 장치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난로 혹은 벽난로는 영어로 불이 있는 장소를 뜻하는 fireplace가 주로 쓰이지만 같은 뜻을 가진 ‘hearth‘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hearth는 기본적으로 난로 혹은 난로 주변이라는 뜻으로 자주 쓰이고, 그 이외에 가정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무척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요-요시후미 선생의 집을 생각한다. 중에서>

‘haerth‘는 난로 바닥이라고 직역을 하기도 하는데요 ‘h‘를 한쪽으로 슬며시 밀어 놓으면 ‘heart‘ 마음이 됩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불을 품은 벽난로처럼 우리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장미마을 식구들의 점심 대접에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동네엔 어른들도 아이들도 있어야 동네답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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