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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Nov 01. 2021

정원사의 집을 생각한다.

2019년 10월 23일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곳이 도시건 시골이건 상관없이 주변과 유형무형의 관계를 맺는 것이므로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건축물 하나 혹은 집 한 채가 원래 풍경 안에 사람살이의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적이고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지은 건물 하나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너무나도 간단히 망쳐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집을 생각한다 중에서- 20p>

요시후미 선생의 글에서
‘설계와 시공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에 동업에 종사하는 저로서는 책임감 같은 것이 묵직하게 차오릅니다. 

건축가는 집과 마을과 도시의 얼굴을 만들어 내는 직업인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해석하고, 삶을 담는 장소를 1:1로 현실화하는 역할임이 분명해지는군요.

˝우리가 집이 없어서, 집을 짓는 것일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강의를 가서도, 건축을 의뢰한 건축주분들께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물어봅니다. ˝우리가 왜 이일을 하는 것일까?˝

˝그러게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요˝
˝막연하게 새로운 집을 짓고 싶었어요, 지금 사는 곳은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에요˝
˝아내와 아이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나만의 장소가 필요해요˝
˝왜 집을 지으려고 했는지 처음 생각해보네요?˝

내가 하는 일이 간단히 풍경을 망쳐버리지는 않고 있는지, ‘요시후미‘ 선생의 글에서 일의 의미를 찾아봅니다.

아주 가까운 지인이자 건축주인 
정원사의 집은 1년 전에 편지글을 주고받으며 만들었습니다.
편지글 속에는 진지하게 고민하던 흔적이 녹아있어 함께 나누어 봅니다.


2018년 01월 27일 편지글에서
정원사님과 글을 나누는 것이
‘일상의 의식’이 되는 것은 아닌지 기분 좋은 예감이 드네요.

남해 동경 작업실은 즐거이 다녀오셨는지요?
가는 길을 정원사님들과 같이 동행하지 못해 아쉽기만 합니다.

나란히 앞을 바라보며 몇 시간을 쉬엄쉬엄 이야기하며 갈 수 있는 조수석의 위치가 왠지 탐이 났었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남해 편집장이 전화를 주었더군요 
“건축가님 몇 시에 내려와요?”
“미안해요, 제가 정리할 일이 있어서 이번에는 동행을 못하게 되었어요. 정원사님만 다녀갈 거예요”
“갑자기 힘이 쑥 빠지는 것은 왜 그렇지?”
라는 편집장의 표현에 제 입가에 미소가 올라오더군요.

남해 동경 작업실은 남해스러운 집을 만들어 보는 것이 시작이었고 마지막에도
‘남해스러운 집’이었는데 그렇게 된 것 같아 출판 편집을 업으로 삼고 있는 유쾌한 부부에게 잘 어울리는 집이 되었지요. 지금은 정원사님들이 ‘남해스러운 정원’을 위해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기쁘게 몇 차례 다녀와 주시니 설계와 공사 안내를 담당했던 저로서는 정원사님들께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담 번에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 사겠다는 약속으로 대신할게요.
세상의 이치처럼 돈으로 치자면 분명 이문이 남지 않는 먼 길 임이 분명한데도요.

현장 김 소장도, 목수 이 팀장도, 그리고 함께 일하는 현장 식구들이 바다가 남해인 남해까지 그렇게 다녀와들 주시니 제 어깨에 뽕이 들어간 듯이 부끄럽지 않아서 좋습니다.

남해 정원 이야기는 다음번에 해주세요. 혜미 정원사의 초안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정원사님댁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해 놓고는 사설이 조금 길었지요? 

이번 겨울은 정말 춥다는 표현을 자주 쓰게 됩니다.
어제 체감온도는 영하 23도였어요. 몸이 저절로 사그라드는 것 같은 겨울입니다. 어제 버스를 이용해 서울 출장을 다녀오면서 이정 원사님 집의 구성을 스케치해보았어요
버스로 이동하면서 이어폰을 귀에 걸고, 3일 전 이정원사님댁에서 나누었던, 집에 대한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다시 한번 들어보았습니다.

그날 나눈 이야기들을 다시 들어보면서 제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키워드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을 건져 올려 보았습니다.

아빠가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혼자 남은 엄마가 즐길 수 있는 따뜻한 햇볕이 드는 장소
큰 창과 별을 보며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달라고 하던 큰아이의 이야기에는 왠지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이 들기도 했고요.

둘째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편히 쉴 수 있는 ‘휴식 같은 집‘을 이야기를 할 때는 하경이의 마음도 슬쩍 엿볼 수 있었지요.

첫째, 둘째, 셋째 희원이까지 ‘아빠의 작업실’을 이야기할 때는 세 딸을 둔 이정 원사님을 살짝 질투하는 제 모습이 그려졌답니다. 아빠의 작업실 반드시 만들어야겠어요. 어떤 작업실 일지 저도 궁금해지네요.

이정 원사님과 선화 어머니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구들방을 이야기할 때는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10이라면 만류하고 싶은 마음은 3 정도 되었다고 할까요? 저희 집이 구들방을 사용하고 있으니 좋은 점을 이야기하라면 한 시간도 더 이야기하겠지만 이런저런 불편한 점도 있기 때문에요.

특히 ‘엄마의 아침 장소’ 이야기를 듣고는 누구에게나 ‘장소’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의 이점을 이야기하라면 가족들 각각의 장소가 특별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2시간가량 이어진 유쾌한 대화를 듣고는 제 노트에 이렇게 써보았답니다.
‘이야기하는 정원 같은 집’ 정원사님 댁의 테마라고 할까요?

글 첫머리를 시작한 ‘남해스러운 집’이 남해 편집장 부부의 테마라면 정원사님 댁의 집은 ‘이야기하는 정원 같은 집’ 이것이 끌리네요
기본 구상을 위한 과정이 마무리하고, 디자인하고,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설레게 할 ‘테마’가 만들어졌어요. 가족분들의 마음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마음에 쏙 듭니다. 

큰아이 둘째 셋째 아이의 이야기와 엄마의 아침 장소와 아빠의 서재가 있는 ‘이야기하는 정원 같은 집’을 구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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