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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Nov 01. 2021

오만 원짜리 호두 계란 통밀빵

2019년 10월 31일

발효종으로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밀과 물을 1:1의 비율로 섞어 상온에서 21도, 14~16시간 정도 발효시키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을 위해서 물이 도와주고 있죠.. 밀과 물을 섞어주면 효모는 자기 몸에 있는 효소를 이용해  발효를 일으킵니다.

실내 온도나 습도에 따라서 발효종의 숙성 정도가 달라지는데, 잘 숙성된 발효종(levain)은 모양이 부풀고, 코를 가까이하면 시큼한 산미의 향이 납니다. 

저는 잘 발효된 시큼 향(sour)을 맡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발효(發酵)‘라는 단어를 여기저기 조합해서 자주 사용하기도 합니다.

빵 발효, 생각의 발효, 공간의 발효... 마음의 발효, 시간의 발효 같은 말들이죠. 발효가 되려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인데 숙성을 위한 ‘시간‘이 참 매력이 있어요.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고, 벽과 문 사이에 끼어드는 석양빛 같은 것들도 어찌 보면 발효같이 느껴집니다. 

아내와 어린이에게
˝오늘 발효종 향이 좋다. 한 번 맡아볼래?˝
하면서 발효종 병의 뚜껑을 열어주면 둘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으이, 어서 치워˝ 또는 ˝이게 뭐가 좋다는 거야 코가 쒜한데˝
상상이 가시는지요?
제가 향을 음미(意味)하는 편이라면, 아내와 아이는 익숙하지 않은 단계입니다. 

조금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네요. 
건축물을 짓기 위해, 콘크리트를 만들 때도 시멘트와 자갈, 물이 들어가는데, 이때 시멘트와 물이 만나면 수화반응(水化反應 )이라는 것이 일어납니다.
시멘트 풀이 열을 내면서 굳어지는 과정을 수화반응이라고 해요.  

물이 밀을 만나 오븐에 구우면 빵이 되고 시멘트를 만나면 단단한 덩어리가 됩니다. 
빵을 이야기하다 시멘트 이야기를 하니 오늘 빵은 왠지 빵칼로 잘리지 않을 수도 있겠는데요.  

어젯밤에 옆집 쌍둥이네가 찾아왔어요.
˝반야 아빠 있어요?˝
˝네 어서 와요˝
˝호두를 조금 가져왔어요, 그리고 여기 5만 원도 같이요˝
˝호두는 잘 먹겠는데 5만 원은 뭐래요?˝
˝이 목수님이 우리 집 2층 방문을 두 개나 고쳐 주셨는데, 돈을 안 받는다고 하셔서요, 이 돈으로 밥이라도 대접하면 좋겠어요. 받아주세요˝

2층 방문이 망가져서 불편하다는 쌍둥이네 이야기를 듣고, 저와 함께 일하는 목수님에게 일전에 부탁을 했었습니다.

˝이 목수님 옆집 문이 고장이 났는데 언제 와 줄 수 있어요?˝
˝금방 다녀갈게요˝
그러더니 ‘휘리릭‘ 우렁각시처럼 다녀갔습니다.

같은 건축가라도 입과 펜만 쓰는 저와는 달리 목수님은 ‘망치‘라는 별명답게 ‘장인‘의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지은 지 10년이 되어가다 보니, 손 볼일이 생기면서 건축가인 저의 쓰임도 하나 둘, 늘어가고 있습니다. 
방문을 두 개나 고쳐주었는데 수리비도 받지 않고 그냥 갔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5만 원을 가져왔습니다.
돈은 되었다고 제가 사양을 했는데 ˝이 돈으로 밥이라도 대접해주세요˝라고 하니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주에 김포 현장에 들어갈 때, 맛있는 밥 사드리고 올게요. 고마워요. 챙겨주어서요˝

호두를 건네받은 아내는 빵 구울 때 호두를 넣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딸도 ˝아빠 넣는 김에 계란도 넣어봐요. 좀 맛있게 해 봐요.˝라며 먹을 만한 빵을 만들라고 부추깁니다. 

˝그럼 내일 아침 빵은 호두도 넣고 계란도 넣어볼까˝

아침에 빵을 굽기 위해서는 초저녁에 반죽을 해두어야 합니다. 
앉은뱅이 통밀 100g, 우리밀 100g, 밀기울 30g, 발효종(levain) 200g, 호두 30g, 물 200g, 계란 한알을 넣고 반죽을 준비합니다. 
˝아빠 오늘은 내가 반죽할게˝ 딸이 재료를 섞고, 저는 어린이 옆에서 돕는 이 역할을 하게 되네요. 

오늘 아침에 5만 원짜리 호두 계란빵을 옆집에 전해주고 왔습니다. 
오븐에서 나온 빵 냄새가 좋은 아침입니다. 모양도 제법 나왔네요. 다행히 콘크리트처럼 딱딱하지도 않답니다. 

˝오늘 아침에 구운 빵이에요, 어제 가져다준 호두를 넣어서 만들었어요. 식사 전이죠? 커피랑 맛있게 드셔요˝

쌍둥이네는 알고 있을까요? 이 빵이 얼마짜리인지?
오늘은 5만 원짜리 호두 계란빵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아내도 어린이도 
˝음 맛있다.˝

가끔은 모두가 좋아할 만한 빵을 만들어야겠어요.
고집부리지 말고요


아침에 구운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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