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밤늦게 자고 일어나더라도 새벽에는 명상과 108배 절을 하고 따뜻한 차 한잔을 입안에 머금고, 두 손에 찻잔을 들어 손안에 들어오는 포근한 온도를 느끼는 일만큼 좋은 시간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밤사이에 꾸었던 꿈도 생각이 나고, 오늘은 무엇을 할지 곰곰이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말도 필요 없고, 눈을 어디에 고정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물음에 대답할 필요도 없는 묵언의 시간이지요. 단지 눈을 감고 손과 입안에 머금은 따스함을 느끼면 되는 일입니다. 차를 마시면서 노자의 도덕경을 펼쳐봅니다.
‘총애나 욕됨 보다는 자신의 내부에 자연성으로 존재하는 생명력을 소중히 하라 ‘는 노자의 글귀가 마음에 가까이 옵니다.
찻잔에 찻물이 얕아지면, 이른 아침의 고요함도 이제 접을 시간이 됩니다. 하루의 일과를 준비해야지요. 몇 시까지는 어디에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패턴에 살다 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소소한 일상이 감사한 것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건축가들 중에는 노자의 사상을 이야기하고 공간에 담아두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건축활동이 의도적으로 보이지는 않기에,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삶을 통해서 몸으로 익힌 장소에 대한 의식이 그들의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몇 해 전에 건축 답사를 갔을 때 상하이 도서관에서 작은 책을 하나 샀어요. 처음 본 건축가의 작품집인데 작은 그림 도판으로 만들어진 책에서 '왕슈(王澍)'라는 건축가를 만났습니다. 그는 문인 기질을 갖춘 건축가라는 평가와 함께 중국의 실험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이 동양의 도가 사상과 연결되어 있음은 식견이 짧은 제가 책의 내용을 읽지 않아도, 책 속의 사진을 몇 컷 만 보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왕슈를 만난 후로 중국의 건축가들을 몇 명 더 찾아보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 ‘건축에서 자연을 느낀다 ‘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지요.
제 안에서 올라오는 부러움반 시샘반을 느끼며 나의 건축활동 방향도 조금씩 자연을 향해 선회하고 있더군요. 지금도 자주 그들의 작품을 펼쳐보고 수십 번은 더 봤을 Youtube 영상물을 또 보게 됩니다. 여행을 통해서, 모르는 건축가들의 작품을 눈요기하는 일도 여행의 백미 중에 하나이지만, 도서관과 서점에서 보물을 찾듯이 건축가들을 찾아내는 일은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처럼, 즐거운 여행의 기본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왕슈(王澍), 리지아오동(Li Xiaodong) 건축가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가을로 접어드는 요즘 계절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아궁이에 넣은 군불처럼 솔솔 올라옵니다. 조만간 두 분의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가게 되면 현장 김 소장과 함께 동행할 예정입니다. 김 소장은 늘 노자의 글을 입버릇처럼 들려주는 장인(匠人)입니다. 제가 도덕경을 펼쳐 든 것도, 건축에 자연을 담는 작품을 알아보게 된 것도 김 소장 때문이니 그를 빼놓고 혼자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지난해 김 소장은 담양 명옥헌을 따르는 정자를 사무실 한편에 짓고, 배롱나무에 어울리는 연못도 만들었습니다. 그런 김 소장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일까요?
"명옥헌 닮은 정자 한 번 만들까?" 라며 시작한 정자 만들기는 우리들의 로망을 풀어놓은 것이라고 할까요? 김 소장과 목수들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