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도에 만난 일본인 건축가 ‘토미 마사노리’ 선생님은 저에게 건축의 방향을 이끌어 주신 분입니다. 한양대와 연세대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하시면서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고 지금은 한국 건축의 역사와 기술을 재정리하고 계십니다.
경기도 용인에서 시작된 선생님과의 인연은 5년이 흐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70을 넘기신 나이 탓인지, 식사하시는 모습도, 움직이시는 모습도 예전과 다르게 보입니다. 저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서울에서 먼길을 내려와 주셨습니다. 타시던 오픈카를 후배 건축가인 저에게 넘겨주신 이후로는 몇 년째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계십니다. 현장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김 소장은 교수님이 서울에서 10시 차를 타셨으니 지금 쯤은 도착할 때가 되었다며, 터미널에 다녀오겠다고 합니다.
사회에서 만나고, 서로 다른 국적을 갖고 있고, 20년 이상의 연배 차이로 쉽게 어울리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교수님과 우리 조합의 건축가들 사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몇 해전 인사동의 미술관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젊은 건축가들의 손을 당신께서 두 손으로 꼭 잡고 눈을 마주친 채, 첫 인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일본어 억양이 짙게 베인 톤으로 “저는 ‘토미 마사노리’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기대가 됩니다.” 하얀 턱수염과 콧수염을 기르고, 늘 중절모를 쓰시는 교수님과는 지난 5년간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대구, 보길도, 광주, 거창, 용인, 안성, 인천, 일본의 요코하마, 동경까지 많을 때는 십여 명이 적을 때는 서너 명이 함께 동행한 여행에서 건축가의 발걸음과 시선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한 자 한 자 받아 적는 아이들처럼 우리들의 마음에 새겨 주셨습니다.
용인에서 여러 채의 집을 지을 때 들려주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장소에는 중심이 있습니다.”
노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중심’이라는 단어는 그 이후로 저와 우리 건축가들의 지표가 된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무엇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지만 옆에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에게는 기준이 되었던 것이겠지요.
교수님과 함께한 몇 번의 협업 작업은 모양과 형식이 아닌 깊이와 의미에 대한 내용으로 기억이 됩니다. 세종시 주택, 용인, 경주의 작업들이 그랬습니다.
4년 전에 대구에서 1박을 하고 다음 여정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정 소장님은 토미 주니어입니다.”라고 들려주셨습니다. 노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그 말은 맥을 전수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 이후로 저의 건축활동과 현장 식구들의 작품에는 ‘중심’, ‘길’ 같은 장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안성에서 진천을 넘어가는 호숫가 고개에 있는 매운탕집에 교수님, 이 소장, 김 소장, 제가 마주 보고 앉아 점심식사를 가졌습니다. “이 계절에는 역시 매운탕이야, 가을이라 살이 올라서 그런지 구수한데”라는 김 소장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역시 이맛입니다. 전에도 이 자리에 앉았는데 지금은 테이블이 생겼군요”라는 교수님의 화답으로 대화가 이어집니다.
3년 전 서울에서 로터리 클럽 회원들에게 특강이 있을 때 저도 동행하여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국의 건축은 무거운 건축이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서 무거운 건축을 보기 어렵다.”라고 하시며 많은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적인 사례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우리의 건축적 특징이 무거움에 있다는 표현을 듣고 그 이후로 무거운 건축은 무엇일까 되새기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역성을 이어가고, 생활하는 장소, 건축안에 중심이 있음을 이야기해주시던 노장의 교수님은 우리들에게는 늘 선생님이십니다.
먼길 마다하지 않으시고, 내려와 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겨울에는 우리들과 함께 했던 작품을 포함해서 한국에서 참여한 14개의 작품 발표회를 할 계획이라고 하십니다. 그중에 우리들이 함께 참여한 작품도 7개 가까이 되니 같이 도와주면 어떻게냐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십니다. 덕분에 지난 5년간 교수님과 협업한 작품들을 정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건축협동조합 사옥을 들러보시고는 “여러분들의 사무실도 무거운 건축을 표현하셨군요. 플로팅(공중으로 띄운 건축)을 잘 표현했어요.” 새로 지은 우리들 사무실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에 힘이 납니다. “교수님이 로터리클럽에서 알려주셨잖아요. "한국 건축은 무거운 건축이다." 그때의 말씀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교수님은 “그런 것이죠. 맞아요”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주십니다.
오전에 오셔서 오후까지 이야기를 나누시다, 우리들이 짓고 있는 몇 채의 현장을 살펴보시고, 안성에 소재한 1900년 대 초에 지어진 근대 성당까지 둘러보고 서울로 올라가셨습니다.
건축이라는 공통분모를 두고 있으니 언제 만나도 대화가 끊이지 않는 교수님과 우리들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저도 이제 후배들에게 나누어 줄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아요”라는 표정의 눈빛으로 우리들 한 명, 한 명의 눈을 맞추어 주신 교수님은 우리들의 선생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