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그리는 건축가들
거울 앞에 서면 우리 집이 보일까요?
건축가들이 만나면 멋진 공간을 이야기하고 진지하게 건축적인 대화를 나눌 것이라 생각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창문과 금속공사를 책임지는 전사장님과 현장을 끌어가는 김 소장, 디자인을 책임지는 이 소장과 함께 이른 아침 사무실에 모였습니다. 이 소장은 커피 해피에서 보내준 산미 가득한 커피를 내립니다. 겨울로 넘어가고 있지만 동쪽에서 올라온 아침 햇살은 우리들을 커피 온도만큼 따뜻하게 만들어줍니다.
길게 기른 머리를 상투처럼 종종 틀어 올리는 흰머리 가득한 전사장님은 “지난번에 방충망 신제품 나왔잖아. 그게 다른 집들은 신제품으로 설치해서 편리하다고들 하는데, 우리 집 방충망은 이사 올 때 그대로야. 찢어진 곳은 지난번에 내가 실로 꿰매서 쓰고 있거든”
이에 질세라 김 소장도 “말도 마요, 우리 집 세면기 트랩은 고장난지 꽤 돼서 아예 빼버렸어요,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집사람도 별 말이 없고 해서 그냥 쓰고 있어요”
소문난 대장장이 집에 쓸만한 식칼이 없고, 짚신을 만드는 짚신 쟁이가 헌신을 신는다는 표현처럼 갖추어 놓고 살만한 분들이 오히려 고쳐 쓰고, 없는 대로 산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나옵니다. 하긴 우리 집 온실 천정도 벌써 몇 해 째 청소를 하지 않아, 거뭇거뭇 해진대로 쓰고 있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이 소장님은 웃기만 합니다. 아마도 오늘 모인 건축가들은 모양보다, 본래 쓰임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겠지요?
그래도 건축가들은 “우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뚝딱 고쳐서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장소나 물건이 완전히 망가질 때 까지는 바꾸지 않고, 고쳐 쓰겠지만 말입니다. 기능을 강조하는 것도 실은 우리들의 게으름을 감추고 싶어 그러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김 소장은 자기 집도 언젠가는 지을 거라며 늘 꿈만 꾸어 왔습니다. 한 집을 마칠 때마다 “우리 집을 지으면 채를 나누고 가운데 빈 장소는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이 언제든 들어오고 나갈 수 있게 비워둘 거야”라던 김 소장이 어제는 자문을 구해야겠다며 손수 그린 도면을 보여 줍니다.
두 개의 크기가 다른 채가 있고, 두 채 사이에는 넓은 마당이 그려진 간단한 도면입니다.
천정이 낮은 주방 위에는 몇 계단 오르면 다락같은 안방이 있습니다. 부엌 위는 어린 시절부터 다락방으로 제격이었는데, 계단을 몇 단 더 놓고, 지붕 아래 큰 장소를 안방으로 놓은 김 소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김 소장은 “안방은 잠만 자잖아요, 안방에서 지붕으로 나가고 싶어서요. 거기에 평상을 놓고, 나무 욕조를 하나 두고 싶어요. 애엄마의 사적 공간도 되고, 저도 가끔 몸을 녹이고 싶어서요. 좋잖아요, 하늘을 보면서 목욕을 할 수 있는 거요”
집을 떠나 팔도를 돌아다니며 현장을 지키는 건축가들도 집에 대한 바람이 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집 말고, 내 몸을 누이고,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장소, 지인들과 술 한잔 하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런 시간과 정이 든 가족의 집 말입니다.
생활에 꼭 필요한 만큼의 주방과 거실, 다용도실과 독립된 화장실을 갖춘 김 소장의 그림은 누가 보아도 마당을 언젠가는 지붕으로 이어서 넓은 옥상으로 쓰게 할 계획이 드러나 보입니다. 잔칫날 서른 명은 더 담아낼 큰 대청처럼 생겼거든요. 김 소장은 채와 채 사이에 있는 마당이 지붕으로 연결되면, 남쪽과 북쪽에 문을 달 계획이라고 합니다. 문의 크기를 가로 4미터 높이 2.7미터의 큰 미닫이로 설치한다고 하니, 만들어지고 나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화물선이 항구에 배를 접안시키고 들어 올리는 그런 커다란 문일 것 같습니다.
김 소장은
“어때요?”
저는 도면에서 눈을 떼 김 소장을 바라보며
“응 소장님, 집이 단정하고 호연지기가 있어. 경사진 산속에 나무가 있는 곳이면 정말 좋겠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 꼬르뷔제는 어머니를 위한 작은집을 그렸습니다. 땅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림부터 그리고, 몇 년이 흘러서야 어머니의 작은집을 건축할 장소를 찾았다고 합니다.
김 소장은 언제 집을 지을 계획이냐는 건축주들의 질문에 늘 “우리 집 지을 연습을 여기서 하고 있어요” 라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오늘은 자기 집 그림을 보여줍니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김 소장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 어머니의 집을 지었습니다. 르 꼬르뷔제의 어머니 집은 스위스의 레만 호수 앞에 있습니다. 두 건축가들 사이에 물리적인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확실합니다.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 르 꼬르뷔제의 마지막 집은 4평짜리 오두막이었다고 합니다. 김 소장의 집도 언듯 보면 두 채의 오두막 같아 보입니다. 작은 주방, 작은 거실, 다락같은 안방, 딸아이들을 위한 두 개의 작은방이 전부인 김 소장의 집이 어서 지어지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의 작은 오두막에서 지내보고 싶어 지는군요
김 소장에게
“얼른 짓자, 망설이지 말고”
김 소장은 장흥 사람 특유의 억양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여 하늘에 초점을 맞추며 이야기합니다.
“그럴까”
김 소장은 우리 집 온실 천정을 편백나무로 마감한다고 자재를 주문했답니다.
“편백나무? 그것도 옹이가 없는 무절? 너무 사치 부리는 거 아니지?”
저의 말을 받은 김 소장은
“이제 사치 부려도 괜찮아, 누리고 살아도 되잖아”
9년 전 26평의 단정한 우리 집을 지어준 김 소장에게
“김 소장도 얼른 짓자”
김 소장도 어서 자기 집을 지으면 좋겠습니다.
집을 짓는 일은 내가 살아온 길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많은 건축주들의 집을 지어주며 알게 된 사실입니다. 집은 그가 살아온 그의 얼굴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자화상 같은 그림이라고 하면 과장된 것일까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건축가는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들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집은 어떤 얼굴일까요? 거울 앞에 서면 보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