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전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치고 있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입니다. 순전히 제 기억에만 있는 사진이죠. 아마도 아버지의 20대 초 모습일 텐데, 어디 현장이었을까요? 사진 속 얼굴이 떠오른 것은 현장 식구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사진의 분위기를 찾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가로와 세로에 일정한 간격을 두어 위아래 두 겹(이중 배근)으로 철근을 매고, 시멘트와 자갈, 물을 섞어 바닥을 굳히는 원리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아버지 시절에는 시멘트, 자갈, 모래, 물을 삽으로 비비고 손수레로 나르는 손작업에 의지 했습니다. 지금은 전화 한 통이면 레미콘 공장에서 20분 이내로 콘크리트를 담은 레미콘 차가 도착합니다. 수레로 퍼 나르는 대신에 펌프카가 콘크리트를 쏟아붓고 장화를 신은 작업자들은 가래와 흙손으로 표면을 마무리합니다.
콘크리트 공사는 물 반죽(Cement mixer) 상태의 돌가루를 굳혀 구조체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 시간을 경화(hardening)라고 부르죠. 단단한 콘크리트를 위해 몇 가지 조건을 맞추어야 하는데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관리입니다.
빵의 식감과 맛을 낼 때도 신경을 쓰는 부분이 굽는 온도이듯, 콘크리트 공사는 온도관리가 시작과 끝이라 해도 지나친 이야기는 아닙니다.
반죽된 빵의 모양을 잡고, 오븐에 빵을 넣을 때 190~270도까지 빵의 종류에 따라 온도를 맞추듯이 콘크리트 공사는 4계절 내내 온도에 깨어있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들이 날씨에 집착하는 이유는 작업의 효율뿐만 아니라 빵맛처럼 품질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름과 겨울에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표면이 바짝 말라버리거나, 꽁꽁 얼어서 표면이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강도를 얻지 못해 부실한 공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건축가들 눈에만 보이고, 이 직업에 종사하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렵다는 말을 미리 해두어야겠군요.
“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 ”는 우리네 속담처럼 가을볕은 봄볕보다 부드럽고, 여름 볕보다는 차분하지만 그래도 곡식이 여물만큼은 강렬해서 가을볕이라 해도 콘크리트 품질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승현이네와 황선생 집 1층 바닥도 콘크리트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후속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에 마운드를 다지는 것처럼 “이제 준비가 다 된 것 같군”이라는 표정으로 짧은 머리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이 소장이 매끈하게 굳고 있는 콘크리트 위에서 길고 노란 호수를 들고 물을 뿌려주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내부와 표면의 온도 차이가 크게 나지 않도록 물을 뿌려 외부 온도를 낮추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웃고는 있지만 속에서 열불이 나면 병이 오는 것처럼 무기질 덩어리인 콘크리트도 겉과 속의 온도 차이가 크면 균열이 생기고 품질이 떨어집니다. 반질 반질한 1층 바닥도 이제 마무리되어가는군요. 며칠 후부터는 기초 위에 기둥을 세우기 위한 토대(土臺) 공사를 시작으로 집도 제 형태를 보여줄 것입니다.
사진 속 아버지는 그 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50년 후 당신의 아들이 그때의 당신보다 나이가 더 많아졌습니다.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어 당신의 표정을 사진속에 담고 있습니다.
콘크리트면에 물을 뿌리는 이 소장의 입가에도 사진속 아버지처럼 웃음이 젖어들고 있습니다.
(2020년 10월 7일 )
집을 짓는 일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