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조와 우수관 설치
집을 두고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장소에 따라, 사람에 따라 ‘집’은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자면 ‘집은 살아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건축가들끼리 종종 하는 소리를 빌리자면 사람이 물을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듯이 집에도 물을 들여오고, 흐르게 하고, 대소변은 배관을 통해 정화조로 보내어 정화시킨 후 내보냅니다. 전기는 생활에 필요한 기능적인 도구들을 움직이도록 합니다. 있어야 자리에 놓인 크고 작은 창들은 빛을 들이고 내부와 외부의 사이를 보게 합니다. 지붕과 외벽은 추위와 더위, 비와 바람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집은 무생물과 생물의 경계에 있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건축가들은 사람을 담는 그릇을 짓기도 하지만 생활의 틀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승현이네와 황선생님 댁에 정화조를 설치하고, 배수관을 연결하는 날입니다. 예정된 콘크리트 공사를 위해 바닥 철근을 배근 중이고, 한쪽에서는 배관 매립을 위해 소형 포클레인이 땅을 파고, 그 옆에 삽을 든 설비팀은 배관을 연결 중에 있습니다.
2013년도 이후로 크고 작은 현장을 함께 해온 설비팀은 오늘도 노련한 눈매로 현장의 조건을 숙지하고 상황에 맞게 배관을 놓습니다. 설비에 대해서는 도면에도 꼼꼼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도면대로만 할 수 없는 현장의 조건들을 무시하면 예상치 못한 오류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오류는 당장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몇 달 뒤 입주한 이후에나 알 수 있기 때문에 도면과 지형조건, 건축물의 조건을 살핀 후 방향을 잡고 설치를 하게 됩니다. 배관작업은 유체와 기체가 잘 흐르도록 하는 일입니다. 기본적인 일이지만 흙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경사를 유지하고, 막힘이 없도록 하는 일이 전부입니다.
주택에서 정화조의 역할과 위치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화장실과 주방에서 나오는 하수를 순조롭게 받아내야 하고, 처리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게 됩니다. 개별 정화조를 두어야 하는 단독주택의 경우엔 미생물을 이용하여, 생활하수를 농업용수 이상으로 사용하도록 바꾸어 놓는 장치이니 생활에 꼭 필요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화조의 위치를 선정할 때는 도로변에 가깝게 하는 경우가 우선입니다. 1~2년에 한 번씩 정화조 청소를 하는데, 만약 도로에서 먼 곳이나 마당 한가운데, 정원을 가로지르는 위치에 설치할 경우엔 청소 중에 정원이 망가질 뿐만 아니라 어려움도 따릅니다. 배기가스를 빼는 배기통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에도 거실이나 주방, 방과는 거리가 먼 곳을 선택하게 됩니다. 물론 이웃집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것도 기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택은 일반 건축물보다 작지만 까다롭고 신경 쓸 일이 많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정화조에는 빗물과 흙이 들어가지 않도록 배관을 분리해야 합니다. 종종 정화조에 빗물이 들어가서 낭패를 본 건축주들의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듣게 되는데, 우수관과 정화조는 별도의 배관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충북 괴산에 집을 지으신 심선생님이 사무실에 찾아오셨습니다. 추석 선물로 나무 칠판을 선물하고 싶은데 크기를 얼마나 하면 좋을지 상의를 하신다며 먼길을 다녀가셨습니다. 직접 원목 칠판을 만들어 주시다니 감사한 일입니다. 귀촌 생활은 어떤지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중에 최근 동네에 지은 몇 집의 빗물이 정화조로 들어가면서 정화조 기능이 멈추었던 일도 들려주셨습니다.
아주 간단한 이치지만 생활하수는 정화조에 들어가서 정화를 시킨 후 물을 배출하는 것이고, 우수는 말 그대로 빗물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같은 업에 종사하는 건축가로서 “실수겠지요?”라고 하기엔 옹색한 변명 같아 웃고만 말았습니다.
정화조에 빗물과 흙이 들어가면 안 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많은 양의 빗물이 정화조로 유입되면 흙이 쌓이고 과다한 빗물로 인해 정화기능이 상실되기 때문입니다. 생활하수는 정화조로, 빗물은 우수관으로 연결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건축기술과 재료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건축물은 여전히 자연환경과 함께 작업하는 사람의 손에 의지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사 중인 집은 현장 작업자들을 포함해서 건축가들의 애정이 빠지면 어쩌면 앙꼬 없는 붕어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래도 집을 지을 때는 어른 키 만한 ‘한 길’ 땅속도 잘 알 수 있고, 일하는 사람의 속도 일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사하고 집주인이 생활을 시작하면 건축가들의 애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금세 알 수 있거든요. 정이 담긴 집을 짓는 일은 서로를 보살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건축가들만 잘한다고 정성이 담기는 것은 아닐 테니 새집을 짓는 집주인들도 감시와 의심의 눈 대신 애정 어린 마음을 내어봄직 합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랫동안 살게 될 우리들의 집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설비팀 이사장님은 자동차 정비업을 하시다 건축설비로 자리를 옮긴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이 사장님 팀은 돈으로만 보면 비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이 배관 자재와 공사의 시간, 유지관리에 비례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으니 돈을 평가의 기준으로 따지는 야박한 계산은 없습니다. 정화조 설치가 끝나는 늦은 시간 석양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일을 마친 현장 식구들은 오늘 밤 주량이 꽤 센 설비 사장님과 술 한잔 기울이면서 얼굴빛이 빨갛게 물들겠지요. 집을 짓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더 많은데 요즘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우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집에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2020년 9월 26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