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동안 건축주가 해야 할 일들
'진짜 마음'으로 만나기
“집을 짓는 동안 할 일이 더 있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더 해야 할 일이라?”
곧바로 대답할 수 없는, 정해진 것이 있을 리 없는 물음과 비슷합니다. 조금 더 살펴보면 건축주의 마음은 알 수 있습니다. 의중 같은 뭐라도 거들고 싶은 생각, 또는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겠지요.
집을 지으면서 건축주가 해야 할 일을 나열하자면 먼저 죽 끓듯이 변하는 자기 마음에 동요하지 말 것,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주되 크게 동요되지 말 것, 큰돈 쓰는 재미가 붙기 시작하는 때를 조심할 것, 배우자의 의견은 귀담아 듣되 절대 비난하지 말 것, 책이나 영상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의 집을 자기 집과 절대 혼동하지 않기, 가진 돈 살림 잘하기, 현장에 자주 와서 집이 변해가는 모습을 살펴보기, 이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 말을 줄이고 그래도 한 가지만 더 하자면 집 지어주는 현장분들과 따뜻한 밥 한 끼를 ‘진짜 마음’으로 같이 먹는 일이라고 하고 싶군요.
밥을 같이 먹는 사이를 ‘식구’라고 괜히 부르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밥을 먹는 일은 서로 마주 보며 앉을 수 있고, 밥을 핑계로 궁금한 것들도 물을 수 있고, 현장의 어려움과, 건축주 자신이 겪고 있는 불편함이나 기분 좋음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황선생과, 승현이네가 현장 식구들과 회식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황선생이 짓궂은 표정으로 조합의 ‘서재’에 들어옵니다. 건축 협동조합 건물의 1층은 네 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 누가 오고 가는지, 어디서 바람은 불고, 구름은 머물고, 새가 날아가는지 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들어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건물의 형태 때문인지 몇 차례 오셨던 분들은 멀리서부터 손짓으로 인사를 나누며 들어옵니다. 저도 손인사로 맞이합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미국 건축가 찰스 무어(charles moore)와 동료들이 1960년대에 함께 작업한 ‘씨랜치(sea ranch condo)’ 의 사진을 한 장면씩 음미하고 있었다고 할까요? 막 도착한 황선생은 주방에서 손수 페퍼민트 차를 내리더니 제 옆에 앉아 책 읽기를 다 마칠 때까지 별 말없이 차를 드시더군요. 1년 넘은 인연 덕분에 저도 황선생도 서로의 시간을 간섭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오해하지 않는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
조용히 차를 마시는 황선생에게 “이 책은 ‘찰스 무어’라는 미국 건축가의 작품인데요, 50년이 넘은 집이지만 장소나 형태, 걷는 길, 정원과 자연이 이어지는 건물의 구성, 재료, 온실의 배치들을 눈여겨보게 돼요” 라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황선생 님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배가 나오고, 안경을 쓴다면 ‘찰스 무어’와 비슷한 이미지가 될 것 같아요. 장난스러운 그 표정도 비슷하고요” 유명한 건축가와 닮았다는 표현에 제가 읽던 책을 끌어다 자기 앞에 놓고 책장을 넘기는 황선생의 옆모습이 건축가 다워 보입니다.
승현이네와 황선생 집도 동시에 지어지고 있습니다. 목수들이 번갈아가며, 두 집을 다니다 보면 문턱이 닳는다는 소리가 의심스럽지 않습니다. 정말 문턱이 닳아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마다 진짜 문턱은 닳지 않도록 나무를 덧대어 놓고 마감공사를 하게 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들어오고 나가는 문은 정해져 있습니다. 현관문을 사용할 것 같은데 대부분은 커다란 거실 창을 통해 다니게 됩니다. 작업을 하는 목수들이 거실로 다니는 이유는 자재를 들고 다니기가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일은 집주인들도 실제 집을 지어놓고 살면, 현관 대신 거실 창으로 들고 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현관 계획이 잘못된 것 같지는 않은데, 생활의 표정이 그런 것 같습니다. 황선생과 승현이네가 문턱이 닳을 만큼 열심히 일하는 현장의 건축가들에게 맛있는 밥을 산다고 하니 현장 식구들도 여느 때보다 이르게 현장을 마무리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팀장은 마당 한가운데서 자재들이 서리에 맞지 않도록 덮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팀장의 머릿속에는 오늘 저녁에 먹을 얼큰한 음식 생각보다는 내일 시작될 일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오후까지 끝내야 할 일은 무엇인지로 가득할 것입니다.
“황선생 님 오늘 저녁 드시면서 내일부터는 어떤 일들이 시작되는지 자세히 물어봐요. 그럼 마술이처럼 내일과 이번 주, 다음 주 할 일들까지 술술 나올 거예요” 황선생은 굉장한 팁을 얻은 듯이 환하게 웃으며 자기 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집을 짓는 동안 여러분들은 몇 번이나 현장 식구들과 식사를 할 계획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