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할머니들과의 경쟁

풍작을 거둔 '파프리카'의 추억

by 빵굽는 건축가

스테비아, 오레가노, 땅두릅, 검은 토마토, 두메부추... 더 늦기 전에 모종용 비닐하우스를 다시 만들고, 모종판에 흙을 담고, 구입한 모종 씨앗을 심었습니다. 마음이 급할 때는 저 혼자 해치우듯이 할 때도 있었지만 그리 일을 하면 재미나지 않습니다. 해마다 정원의 모양도, 심고 가꾸는 종자의 종류도 바뀌고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봄날 장에 가서 고추, 파프리카, 가지, 피망 모종을 사다가 심으면 아주 간편하고, 튼튼하게 자라기는 하지만 몇 해를 이렇게 해보니 다른 욕심이 생깁니다. 씨앗을 심고 설렘으로 기다리면서 모판에 물을 주고 모종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보람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 씨앗을 심어 풍작을 거둔 ‘파프리카’의 추억을 되살리며 올해는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씨앗들을 준비했습니다.


설탕을 대체할 수 있는 천연감미료라고 하는 스테비아도 그렇고 허브 중에 새롭게 발굴한 오레가노는 새로 준비한 씨앗입니다. 토마토는 모종으로 구입하면 한 포트에 오백 원에서 천 원 가까이 되다 보니 몇 포트 구입하고 나면 토마토에만 만원 돈이 훌쩍 지출되고 맙니다. 토마토는 모종도 비싸지만 씨앗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검정토마토 씨앗 10알에 삼천 원입니다. 현금만 구매가 가능한 시장에서 모종으로 사면 만원 돈이지만 이른 봄에 부지런을 떨며 심으면 7천 원을 절약할 수 있고, 10알의 씨앗에서 토마토가 몇 상자는 나올 것이니 아깝지 않습니다. 수익률이 몇십 배 되는 장사는 농사밖에 없는 듯합니다. 다만 상품성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니 마트에서 사 먹는 토마토의 모양과 비교한다면 한참을 뒤쳐지기는 합니다. 벌레 먹은 토마토를 비롯해 제 멋대로 생긴 것 같은 토마토도 모두 먹을 수 있으니, 먹는 양으로 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농사를 주업으로 삼는 분들을 추월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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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지나면 산에 피는 산두릅 계절이 됩니다. 산두릅은 두릅나무의 새순인데 봄비가 몇 번 오고 나면 훌쩍 자랍니다. 문제는 모두가 이 ‘때’ 기다린다는 점입니다. 하루만 한 눈을 팔거나 시간을 놓치면 첫째는 이웃동네 할머니들이 모두 따가고, 둘째로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시가 생겨서 먹기 힘들기 때문에 산두릅은 저처럼 주중 일정이 일정치 않은, 건축가들이 야생에서 채취한다는 것이 사실상 무리입니다. 그러고 보니 산두릅을 놓고 감히 동네 할머니들을 저의 경쟁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네요.


우리 집 정원에 두릅나무를 심고 싶은데, 두릅나무의 장점이라고 하면 번식률이 엄청나고 단점이라면 나무에 달린 날카롭고 긴 가시 때문에 찔리기가 쉬워서 정원수로 사용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봄 한철 나물을 먹기 위해 마당에 심기에는 부족한감이 있습니다. 할머니들과 경쟁에서 이기든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지 세월이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려고 합니다.


꽃이 이쁜 부추가 지천인 우리 집 ‘키친가든’에 새로운 부추 종자를 들여놓았습니다. 종자 수로는 세 번째입니다. 두메부추, 새롬 부추, 중국부추까지 같은 부추인데 종자회사에서 이름을 붙인 것도 있고, 원산 지명을 쓰는 부추도 있습니다. 어제 씨앗을 뿌렸으니 한참 지나 새순이 오르기는 하겠지만 부추는 여러해살이라서 한번 뿌려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다년생 나물입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심어도 손색이 없어 종종 추천을 하기도 합니다. 봄부터 꽃이 피기 전까지 새순을 먹을 수 있고, 씨앗은 받아두었다가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어도 좋을 만큼 잘 자라고, 꽃도 먹고, 매콤한 매력이 있는 작물입니다.


봄이 되면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산에 가서 나무도 해야 구들에 불도 넣을 수 있는데 벌써 한 달째 산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가을에 사둔 ‘지게’가 저에게 “이럴 거면 뭐하러 저를 사두었습니까? 저도 산에 좀 가봅시다, 제가 얼마나 유용한 물건인지 아직도 모르시는 거죠?”

마당 정리도 해야 하고, 정원도 가꾸어야 하고, 산에서 나무도 해와야 하고, 집안 곳곳 손볼 곳도 있고 마음이 바쁜 계절입니다. 그래도 정말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일이 모종을 준비하는 일인데 1차 모종 심기는 해결했고 남은 씨앗은 작은 화분들에 나누어 심는 일이 남았습니다. 여기서 끝나는 일은 아닙니다. 정성스럽게 물도 주어야 합니다. 딸아이가 모종에 그림을 그려서 무엇을 심었는지 알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럴 때 아빠는 일을 빨리 끝내는 것이 목적이고 딸아이는 일을 즐기는 것이 분명합니다. 저보다 한 수 위의 딸아이에게서 시간 사용법을 배웁니다.


잔디도 걷어내고 있습니다. 잔디는 ‘저 푸른 초원’이라서 좋기는 한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구석 때문에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무한번식을 하면서 텃밭과 나무 아래까지 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텃밭도 잔디밭, 나무 아래 꽃밭도 잔디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모조리 걷어내려고 합니다.

작년에 다녀왔던 일본의 ‘오부세 정원’처럼 잔디 없는 정원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일본 정원 답사를 다녀온 지 1년 만에 시작한 잔디 제거 프로젝트입니다. 잔디를 모두 제거하기까지 이 속도로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잔디 없는 정원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자연농법을 펼치고 있는 '가와구치 요시카즈' 선생의 말씀처럼

"자연농의 스승은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도 푸르게 우거지는 자연의 숲과 초원이다."를 우리 집 마당에 실천하기 위해 이 봄을 가족들과 즐기고 있습니다. 방임이 아니라 최소한의 농작업과 자연의 조화를 깨지 않아야 한다는 '가와구치 요시카즈' 선생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알아차리는 시절로 가고 있겠지요?


땅을 밟고 살면서 알게 된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구분지은 계절일 뿐이고 그 사이에 있는 간절기가 정말 소중한 시간입니다. 계절과 계절 사이는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찬스타임’이라고 할까요? 비도 자주 오고, 풀도 더 많이 오르기 전에 오늘은 배수로 청소도 하고 지난가을부터 쌓인 낙엽도 청소하려 합니다.


그나저나 산두릅 타임을 놓치면 안 되는데 할머니들을 도통당해낼 수가 없단 말입니다. ^^


<2020년 3월 28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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