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의 계절

봄이 왔어요

by 빵굽는 건축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당연하다는 표현을 굳이 쓰는 이유는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여름과 가을, 겨울 동안 후회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밟고 사는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고, 봄을 맞이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고추, 가지, 토마토, 파프리카 같은 채소류 씨앗과 저장해 두었던 땅콩 모종을 준비하고, 텃밭정리, 꽃나무 전지와 겨울 동안 쌓인 건초 더미들을 치워야 새봄을 산뜻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퇴비는 만들어 사용하고, 농약이나 살충제를 뿌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 집에는 벌레들이 많습니다. 벌레가 많다는 것은 땅이 건강하다는 표현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이제 그 벌레들과 함께 사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네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겨울 동안 땅속과 나무에서 동면했을 벌레도 있고, 이웃동네에서 날아오거나 비에 섞여 찾아올 벌레들도 있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벌레들과 동거를 시작한다고 할까요? 벌레들이 너무 많지 않냐고 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땅을 밟고 사는 조건이기도 하고, 벌레 입장에서 보면 저 역시 커다란 벌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어 푸릇한 잎채소를 키워 식탁에 올리기 전에 벌레들이 먼저 먹고 남긴 것을 먹는 다고 해도 불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쥐, 뱀과 동거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행히도 동네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 삼총사 (다마니, 대로, 깜선생)가 쥐와 뱀은 멀리 쫓아 내주거나 겁을 주어 보내고 있으니 우린 각자의 삶을 충실히 하고 있는 셈이죠.


2주 전부터 장미를 전정하고, 새순이 오를 수 있도록 어린싹눈을 보아가며 전지를 마쳤습니다. 꽃사과, 포도, 살구, 앵두, 단풍, 매실나무까지 다듬고 나면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나온 듯이 산뜻한 기분이 듭니다. 머리를 깎고 나면 자기도 개운하지만 보는 사람도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처럼 전지작업도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전지로 자른 나뭇가지들은 짧게 잘라서 밑 불용 나무로 아궁이에 넣고 불을 땝니다. 가지들을 그냥 놓아두면 거기서 벌레들이 나오기 때문에 동거하고 싶지 않은 해충들의 알도 얿앨겸, 아궁이 땔감으로 사용합니다. 겨울 동안 잘 말라서 타닥 소리를 내며 불을 올리는 기세가 군불을 넣기에 적당합니다. 마른 가지들이 탈 때 목질이 터지며 나는 ‘타닥, 프억, 피식’ 소리에는 질감 같은 소리가 있습니다.


잠깐 몇 종류 전지 도구를 소개하자면, 손가락 마디보다 굵은 나무는 톱을 이용하고 젓가락 굵기의 가지는 손가위처럼 작은 것을 쓰고, 그 사이에 애매한 굵기의 나뭇가지는 스프링이 달린 전지가위를 사용합니다. 10년 가까이 살면서 정원을 관리하는 도구도 많이 늘고 손에 끼는 장갑도 여러 가지를 장만하고 작업용 앞치마도 두 종류나 되니 살림살이가 제법 되는 셈입니다. 다음번에는 정원 일하는 도구들도 설명을 해보고 싶어 지는군요.


어제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보일러의 배관 연결 소켓을 교체하고, 딸아이와 함께 지붕에 올라가 햇볕에 노출되어 삭고 있는 태양광 전기선을 피복하고 내려왔습니다. 거실 천장에 달린 조명등 하나를 교체하는데도 두세 번 소리를 들어야 교체를 하는 제가 지붕에 올라가는 일만큼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집 안은 아내가 볼 수 있지만 지붕 위 작업은 저만 알 수 있는 일이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결국 지난가을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이제 조금 더 지나면 봄비도 많이 오고 햇살도 뜨거워서 지붕작업이 힘들어지니 늦었지만 시기로는 지금이 적격 인 셈입니다. 인터넷에서 구입한 노출용 보수 테이프와 가위를 주워 들고 지붕에 올라가는데 몇 해 전에도 함께 올라갔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딸아이도 아빠를 따라 지붕 꼭대기까지 올라왔습니다.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거들어 주기도 하면서 높아진 시선으로 마을, 가까이 있는 산, 학교 가는 길, 풍경을 살펴보더군요. 경사진 지붕에 올라서서 걷는 일이 걱정은 되었는지 앉은 자세로 엉덩이를 지붕에 붙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딸아이가 저에게 묻습니다.


“안 무서워 아빠는?”

“응 아빠는 옛날에 경기장 지붕 공사할 때도 거기서 걸어 다니고 그랬어, 처음엔 아빠도 조심조심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는데 조금 지나니까 괜찮아졌어. 안전 모자도 쓰고 떨어지지 말라고 안전조끼도 입고 하니까 나중에는 잘 걸어 다녔어. 우리 집은 1층 지붕이라 높지는 않은데 그래도 구르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조심해라”


보수용 테이프를 자르고 붙이는 일을 딸아이와 함께 하니 혼자 하는 것보다 심심하지 않고 수월하게 마무리되더군요. 지난가을 일을 이제 끝내면서 묵은 체증을 내린 것처럼 “덕분에 일이 금방 끝났네. 보기도 좋고 괜찮지?”

“응 아빠 그럼 다른 집들도 이렇게 해야 하는 거지?”

“태양광 전기패널이 설치된 집들은 다 해야 할 것 같아. 보수용 테이프가 괜찮으니까 동네에 알려주어야겠어”


pimg_7184471112474279.jpg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을 풍경입니다. 딸아이와 멀리 풍경을 보면서 다른 시선의 눈높이로 보는 일의 매력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동네 고양이들은 매일 이 풍경을 봅니다.


10집 중에 5집이 태양광 전지 패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전기는 햇볕과 지붕에서 모두 얻고 있는 셈인데, 패널과 지붕이 연결되는 부분에 노출된 전기선 보호 작업을 다른 집들도 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야겠습니다.


30분이면 마무리할 것 같아서 가볍게 입고 올라왔는데 바람은 차더군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는지 아내가 점심을 먹으러 내려오라고 합니다. 살면서 하나둘씩 손을 보아야 할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집에 필요한 보수는 대부분 직접 하면서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일도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고 할까요?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딸아이가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편을 주는 일이 아닌 다음에는 아이도 엄마 아빠가 생활 속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을 같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 같이 집을 보수하는 일도 그렇고, 원두커피를 마실 때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맛을 볼 수 있도록 커피잔을 내어주고, 동네에서 영화를 보거나, 어른들의 차모임, 술 모임이 열렸을 때도 가볍게 한두 잔을 맛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딸아이도 이제 청소년이 되어가고, 제가 자라던 때와는 다른 가치와 문화, 환경에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번 봄에도 딸아이는 무척이나 자랄 것 같습니다. 정원에 자라는 나무처럼 전지작업을 하지 않으려 하는데 잔소리를 하는 저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네요. 그래도 고맙고 감사히 자라 주는 딸아이가 있어 우리 부부의 봄도 푸릇해지고 있습니다. <2020년 3월에>

이전 03화꽃씨를 나누는 시골 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