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족의 캔버스
“시간이 갈수록 집이 모양을 내니 우리집을 찾아가는 길 같아요” 따스한 겨울 덕분에 포비, 바람개비, 베짱이네 세동의 콘크리트 벽체가 모두 올라가고 지붕이 만들어지면서 자기 집이 보이기 시작하는지 현장에서 만난 건축주들은 이제야 뭔가 좀 보인다는 표정입니다. 이럴 때는 땅의 맥락과 가족의 특징에 어울리는 안을 제안하고 공사 과정을 함께 하고 있는 저도 어깨에 힘이 아주 살짝 들어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네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고 있는 현장 식구들도 만날 수 있고, 예상보다는 빠르고 야무지게 제 모양을 갖추어 가니 집주인들 맘처럼 다가올 시간들이 기다려집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머리스타일이 완성된다고 할까요? 각자의 머리 모양에 따라 사람도 제각각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그들의 성격과 삶, 직업까지도 어림짐작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처럼 건물도 지붕의 모양에 따라 분위기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고, 눈이 내리고,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지붕의 형태를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저로서는 단연 경사지붕을 추천하게 됩니다.
형태에서 오는 익숙함과 편안함 외에도, 경사지붕이 갖고 있는 구조적 장점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평지붕이 모던하고 세련된 맛이 있기는 한데, 평생 살 집을 만들 것이라면 아무래도 비가 흐르고, 눈이 녹으면서 발생하는 누수가 염려되고, 여름과 겨울 에너지의 30%가 지붕에서 손실되는 것 때문에도 물이 고이지 않고, 따뜻한 공기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사지붕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이런 저를 두고 조금 보수적이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렇게 해서는 눈에 뜨이는 건물을 만들기는 애당초 전제 조건이 너무 많다고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도 한시적으로 머무르는 건물이면 몰라도 ‘생활하는 집’ 만큼은 조금 보수적이어도 되지 않을까요?
예전처럼 동네마다 목수가 있어 어렵지 않게 도움을 얻을 수 있고, 집주인이 손수 수리를 하며 살던 시대와는 다르고, 일반 건물과 달리 집은 365일 주거(住居)를 목적으로 하는 점에 있어서 쓰임이 다르기 때문에 시대의 유행을 민감하게 따라가기보다는 그 지역의 풍토와 생활 패턴에 맞는 집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붕과 벽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손들이 모였습니다.
보이시나요? 집을 짓는 일은 돈을 주고 사는 것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평지붕보다 경사지붕이 무조건 좋다는 뜻은 아니니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으려 합니다. 이왕 시작한 경사지붕 이야기를 더 해볼까 합니다. 경사지붕도 2면 박공, 4면 모임, 한 면 경사처럼 여러 각도를 이용한다면 새로운 형식을 찾아낼 수 있고, 지붕 아래 다락과 실내에서 개방감 있는 천정 높이까지 확보할 수 있어 생활에 필요한 매력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사동 세집의 지붕 형태는 우진각, 모임, 변형 박공으로 모두 제각각이지만 경사지붕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효율을 높이자고 하면 똑같은 집으로 만들면 그만이겠지만 개개인의 생활과 바램을 따르다 보면 빛의 스펙트럼처럼 다양해집니다. 건축은 융통성 있는 작업이 분명합니다.
공동육아를 통해 이룬 지난 10년간의 커뮤니티 덕분에 세집의 키워드는 ‘소통과 가족’입니다. 전체 배치와 각 집의 내부 구성도 소통을 기준으로 하고 가족의 의미를 충실하게 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실비오 까르따(Silvio Carta)는 “맥락과 연결된 작업일 경우 건축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다. 맥락은 가장 다양하고 개방적인 의미를 가진 배경이자 캔버스인 것이다”라고 하는 것처럼 디자인과 생활 사이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잠시 집 내부를 들여다볼까요? 집의 중심에 계단을 두어서 어디서든 가족과 이야기하고 볼 수 있도록 이끌고, 현관 옆에 화장실을 두어 손님이 쓰기에도 편하고, 정원 일을 하면서 실내에 들어오지 않고도 볼일은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면 현관에서 바로 다용도실에 들어가고, 주방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통과 가족의 의미를 글과 말로만 담을 수는 없지만 몇 가지 건축적 장치들이 생활과 편리함 사이의 균형을 시도하는 셈이죠.
성사동 세 가족은 새집이라는 캔버스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요? 그동안 떨어져 살아도 잘 유지되던 이웃의 정이 혹시 붙어살게 되면서 흥이 깨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10년의 내공이 있으니 떨어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흉이 드러나고 단점이 나타나더라도 생활안에서 잘 녹여낼 것입니다. 연애할 때도 좋지만 결혼해도 좋은 연인들처럼 각자의 시간을 서로에게 맞추며 살아갈 성사동 식구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202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