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carpool)하는 동네 식구들
아침 일찍 오후에 있을 ‘안성 의료복지사회적 협동조합(안성 의료생협)’의 ‘내 건물 갖기’ 워크숍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차분히 준비하고는 있지만 마음은 조금 부산합니다. 오랜동안 인연을 맺고, 대의원 활동도 했던 ‘안성 의료생협’의 새 건물을 위해 조합원들을 모시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축 공간’을 찾기 위한 내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안내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따뜻하게 차려준 아침밥과 노란 계란찜을 훌훌 식히며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차가 서 있는 마을 주차장까지 가려면 집을 나와 200보 정도 걸어가면 됩니다. 100여 미터의 흙길인데 동네 아이들에게는 아끼고 즐기는 발랄한 동네길입니다. 그 길에서 출근하는 옆집 누님, 형님을 만나고, 고양이 깜선생의 배웅을 받으며 걷고 있자면 3호 대발이(큰 개)가 꼬리를 둘둘 돌리며 멍멍 인사를 나누어 줍니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산이네 아빠는 새벽 5시에 출근하기 때문에 지방 출장으로 일찍 나오는 날에는 산이 아빠도 만날 수 있고, 차례대로 아침 7시 30분, 8시, 8시 30분에 출근하는 동네 식구들을 지켜보기도 하고 만나 볼 수도 있습니다.
카풀(carpool)을 하는 식구들은 주차장에서 기다리는데 비 오는 날과 겨울엔 고생스럽기는 해도 ‘공유자동차’의 삶을 실천하고 있으니 쫌 앞서가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3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살고 있는 출근길 아침 풍경입니다. 한동안 아파트에도 살아보았지만 그때는 느낄 수 없는 우리 동네만의 아침 풍경이 있습니다. 고양이, 입김, 눈, 산길, 마을 주차장, 가로등, ‘안녕’ 하며 반기는 식구들의 웃음 띤 인사 같은 회화적 풍경이라고 할까요? 그림 같은 배경과 색이 있습니다. 마치 고흐의 작품에 나오는 노란색 일수도 있겠네요.
아침 출근길에 주차장에서 만난 옆집 누님이 “오늘 전화가 한 통 올거야. 자기도 아는 선생님인데 땅을 사고 싶다고 하셔. 땅 구입 시에 주의할 내용이나 살펴 줄 것이 있으면 상담 좀 해줘요. 부탁해요”
부동산을 전공했거나 토지거래를 업으로 삼고 있지는 않지만 종종 받는 부탁들 중에 하나입니다. 아무래도 건축가로 살아가다 보니 집과 관련한 이런저런 연결 고리들에 있어서는 제가 전문가라고 생각들을 하시는지 땅을 사고파는 일부터, 전기 수리, 수도 고치기, 태양광 설치 방법, 심지어 국내외 여행을 갈 때 어디에 묵어야 좋을지, 거기 가면 어떤 건물을 봐야 할지, 템플스테이를 하고 싶은데 추천할 곳은 없는지, 갈 만한 음식점이나 카페는 어디에 있는지 같은 생활 전반에 관한 것을 물어오는 때가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낙천주의 건축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아닐까요? 조금 냉담한 성격이라면 투덜거리기 쉬운 요청들도 있겠다 싶지만 다행히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긍정적인 사람이고 거기에 가끔 수다스럽기도 해서 기꺼이 이야기를 주고받아 옵니다.
오후 늦게 박 선생님이 2년 전에 퇴직한 남편분과 함께 사무실에 찾아오셨습니다. 10년 만에 만난 박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십니다. 낭랑한 목소리도 여전하고 표정도 밝고 씩씩한 모습도 그대로였습니다.
“오랜만이에요. 별일 없으셨지요?”
“네 선생님도 반가워요. 지금도 평택에 살고 계시나 봐요?”
“네 맞아요 벌써 10년째 같은 초등학교에 재직하고 있어요. 남편은 먼저 퇴직하고 저도 몇 년 후에 퇴직하고 새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땅을 알아보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층간소음 문제로 아래층과 오해 아닌 오해를 받고 맘이 상했던 사연, 땅을 밟고 살고 싶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땅을 사실 때 살펴볼 것이 있기는 하죠. 조선 중기 이중환 선생님이 쓰신 ‘택리지’에 보면 이런 이야기들이 있어요. 첫째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곳, 둘째 교통이 편리한 곳, 셋째 환경이 좋은 곳, 마지막으로 이웃이 좋으면 비로소 ‘명당’이라고 했어요.” 기술이 발달해서 경제, 교통, 환경은 바꿀 수 있지만 이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이웃이 좋은 곳을 고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을 드렸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은 ‘생활하는 집’이라는 주제를 서로가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노년이라고 하기에는 몸도 마음도 젊은 박 선생님 내외분에게 내 인생의 마지막 집, ‘last house’라고 생각하시고 땅과 집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이야기드렸습니다. 생활환경을 바꾸는 일은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인데 무엇을 중심에 놓을 것인지, 왜 집을 지으려고 하는지, 땅을 살 때 점검할 사항들, 자기 자신의 우선순위 기준은 무엇인지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고는 다시 뵙기로 하였습니다.
겨울을 이어받은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겨우내 화장실에 들여놓았던 깔리만시, 고무나무, 재스민, 서양 고사리, 치자 같은 온대성 화분을 온실에 옮겨 놓았더니 화장실도 넓어지고, 온실은 다시 초록으로 빼곡해집니다. 우리 집 정원(내추럴 가든)에 있던 보리싹 비닐하우스를 걷어내니, 마늘, 유채, 부추 대가 옹기종기 올라오고 있습니다. 봄 싹들도 긍정적인 건축가의 정원에 생명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지난가을에 비워놓은 딸기밭에 마늘과 유채를 해볼까 합니다. 딸기 수확이 줄기는 하겠지만 단일작목보다 다양한 품종을 하기로 하면서 설렘이 생깁니다.
작목이라느니 품종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우리 집 텃밭의 규모를 엄청 크게 부풀리는 것 같아 오해가 없도록 이야기드리자면 우리 집 정원과 텃밭은 모두 다 합해서 좌우로 20보가 조금 넘는 아주 작은 마당이니 전업농이라는 상상은 말아주세요. 이 정도 마당만 해도 우리 가족과 저에게는 아주 아주 큰 마당입니다. 봄이 오고 있어도 건너집 벽난로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바람을 따라 모양을 바꾸어 가며 피어오릅니다. (2020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