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말이야, 생활하는 곳이라고”
(2020년 2월 16일에)
경기 서부의 세 곳 현장을 능숙하고 부담 없이 운전하며 동행하는 건축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녀왔습니다. 고촌리와 성사동 두 곳은 지난해 4월부터 다니면서 어디로 이동을 해야 도로에 서 있는 시간이 줄어들지, 어느 시간에 움직여야 두 곳의 현장 식구들과 건축주들과의 만남도 여유로울지 노하우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한 곳의 현장을 속도전으로 마무리하는 일은 없기에, 처음 땅을 본 시간부터 계산하면 평균 10개월 이상은 꾸준히 장소와 사람을 만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먹고나 살겠냐는 이야기도 가끔 듣기는 하지만 건축 의뢰를 받고, 설계와 공사, 입주 후에 마무리 손질까지 예를 들면 전기와 상하수, 주방 가구 점검까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살피고 나면 열 달에서 열두 달 정도가 지나갑니다. 남들은 한 달 만에 설계하고 한 달 만에 집을 짓는다고 방송에도 나오고 그렇게 해서 공사비도 엄청나게 절약했다고는 하지만 저는 그럴 재주가 도통 없나 봅니다.
아니 엔지니어 출신의 건축가들은 솔직히 말해서 그 말을 믿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한 달만에 설계를 완성할 수 있단 말인가? 공사를 한두 달 안에 마치고 정말 입주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 우린 점점 시장경제라는 것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염려 섞인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긴급구호주택이 아닌 다음에야 작게는 수십 년 동안 사람을 담아야 할 집이 두서너 달 만에 뚝딱 지어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라며 우리만의 경험들을 이야기합니다.
“집은 말이야, 생활하는 곳이라고”
바야흐로 인공지능과 3D 건축이 나타나는 시대에 이렇게 느려 터진 건축가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지 걱정해주는 분들도 계시기는 합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습니다. 마음이 사는 장소에는 ‘정신’(Spirit), ‘대지의 혼’(genius loci) 같은 것이 있어서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축가라는 점 말입니다. 그동안은 나이가 많은 의뢰인을 만나왔다면 지난 이삼 년 전부터는 새로운 세대의 건축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도 늘어나고 있으니 내 것 만을 고집하는 불통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김포와 고양을 동행하는 건축가는 디자인을 담당하는 여성 건축가입니다. 저와는 2006년에 만났으니 회수로만 해도 15년이 되어 갑니다. 처음엔 간단한 눈인사만 하는 사이에서 시작해 8년 전부터는 파트너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저와 일하는 분들 대부분이 10년을 넘고 있어 어찌 보면 제가 좀 보수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인연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은 아닌지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오래된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는 일만큼 건축의 완성도를 높이고, 군더더기 같은 불필요한 ‘오해의 시간’이 줄어드는 일도 없습니다.
장점을 굳이 나열하자면 서로의 스타일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Style’이라고 부드럽게 표현은 하고 있지만 ‘Wild character‘(거친 성질)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기는 합니다. 전쟁터로 치자면 많은 장수들이 있는데 서로 간의 친밀도와 대화법, 작전 수행에 있어 너무나도 차이가 커서 협력하면서 승리를 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하게 할 만큼 시쳇말로 성격이 안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식구들이 벌써 10년을 같이 호흡을 맞추어 온 것만 해도 저로서는 굉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흩어지지 않고 자기의 색을 유지하며 한 채 한 채 건물을 만들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좋은 건축’을 통해서 ‘자기’를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른 아침에 시작해서 인천과 김포, 고양까지 오가며 함께 일하는 식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래전 처음에는 일만 이야기했다면 지금은 가족들의 대소사며, 이웃들의 이야기,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책들, 최근 만난 건축주와 나누고 느낀 재미난 사연들, 몇 년 후 우리는 어떨지도,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사이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는가 봅니다. 시인 나태주 선생님의 시집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에서 만날 수 있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시인의 따뜻한 글귀에 마음이 가는 이유가 있겠지요.
함께 일하는 식구들의 성격이 조금 거칠고, 까다로운 성격이라 해도 정말 오래 보아와서 그런지 지금은 그 가시 같은 성질들이 아프기보다는 그 가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임을 알게 됩니다. 땅도, 건축주도, 새로 짓는 집도 살아보아야, 오래 느껴야 예쁘잖아요. 그래서 한두 달 만에 집을 짓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과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장소와 사람, 시간에 투자하라고 만나온, 만나는, 만날 분들을 꼬드기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