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장 디자인
(2020년 1월 22일)
지금까지의 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성격의 일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던 일과는 무관하지 않지만 의미와 내용이 달라지면 건축의 형식도 방법도 달라지기 때문에 경험이나 한 두 권의 책으로는 정리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앞서 만들어진 건축물들을 찾아 답사하고 그곳에 담고자 했던 의미를 음미하는 편이 이야기로 전해 듣거나 생각으로 정리하는 것보다 큰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 수목장과 관련한 건축물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 일이 설계와 시공으로 이루어질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낯선 일을 의뢰받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기는 합니다.
지난 목요일에는 수목장 설계와 공사를 했던 정원사와 함께 이천에 소재한 공원묘지(봉안담)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봉안담은 한눈에 보아도 아담한 숲 속에 작은 예배당을 짓고 그 지하에는,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곳’이라는 시각에서 디자인된 장례시설입니다. ‘죽음은 어두운 곳이다’라는 인식이 지배했다면 이곳은 죽은 자를 위한 장소도, 산자가 머물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 시작한 곳입니다.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밝고 따뜻한 분위기의 봉안시설은 채광과 환기가 가능한 Sunken을 도입하여 내용적으로 나마 죽음은 끝이 아닌 ‘영생의 의미’를 건축적으로 해석한 곳이었습니다.
추모객을 위한 리조트와 레스토랑, 카페도 멀지 않은 공간에 있어서, 사진으로만 본다면 이곳이 장례시설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방문객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이러한 장소들은 설령 상업적 의도를 갖고 있다 해도 쾌적한 장소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죽음의 장소를 살아있는 사람들의 장소로 연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인식에 대해 차분하게 안내하는 책으로 최준식의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죽음학 강의』가 있습니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일 뿐입니다. 죽음이란 단지 이 거친 몸을 벗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흡사 애벌레가 어느 시기가 되면 나비로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 영혼이 머무는 곳은 물질을 벗고 에너지만 있는 세계입니다. 색이 아니라 빛이 있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이 빛나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물질이 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축물을 꼽자면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사그라다파밀리에 성당을 들 수 있습니다. 가우디 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2017년 겨울에 찾은 파밀리에 성당은 빛으로 충만한 성당입니다. 바르셀로나에 숙소를 얻을 때 기준이 가우디 성당과 가깝고 성당이 보이는 곳에 숙소를 정할 만큼 저에게는 가우디 성당에 대한 경외감이 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정말 성당의 높은 첨탑이 잘 보이는 곳에 숙소를 얻고 체류하는 일정 내내 아침저녁으로 성당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첫날 찾은 성당의 빛은 지금껏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천상의 세계가 있다면 이런 곳 일거야” 라며 확신을 했으니 말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지막 날, 새벽같이 짐을 정리하고, 일행들이 아침을 먹고, 짐을 꾸리는 동안 혼자서 바쁜 걸음으로 다시 한번 찾아간 성당은 물질이 빛으로 변하는 시시각각의 흐름이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우디 성당의 지하에도 묘지가 있었습니다. 죽음은 빛과 함께 하는 종교적인 상징이기도 하군요.
영혼은 물질을 벗고 에너지만 존재하는 세계라고 합니다. 제안하게 될 봉안담의 모든 것이 ‘빛의 세상’이면 어떨까라는 키워드를 정리하면서 답사를 마치고, 정원사님의 마음씀을 볼 수 있는 춘천 수목장을 돌아본 후 수목장의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몇 주 후에 건축 개념 안을 제안하기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제안하게 될 실내 봉안담에 물질이 없는 영혼의 세계를 빛으로 담고 싶어 집니다. 정원사와 함께 하는 제안이니 꽃과 나무, 바람과 물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어떤 계획안을 가지고 갈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동안 가우디 성당을 답사할 때 찍었던 사진과 스웨덴의 건축가 '아스풀른드'의 <숲의 화장터>를 한참 동안 지켜볼 것 같기는 합니다. 정원사님도 수목장 관계자들도 기대를 하고 있을 텐데 제가 너무 앞서가는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