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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Mar 09.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4. 호랑이사람



    맹인으로부터 “여기 호랑이가 지나간다.”는 외침을 듣기 몇 년 전쯤 나 역시 호랑이를 본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후배 작가와 대학원에서 같은 과목을 수강했는데 그날은 그녀가 소논문을 작성해 발표하는 날이었다. 발표자가 교탁 앞으로 나가 A4 10장 안팎의 논문을 읽고 질의 응답하는 순서가 다가왔다. 질문이 너무 많아도 탈이지만 없어도 문제일 수 있었기에 나는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쯤 손을 들었다. 명백히 발표자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럭저럭 적당한 질문을 건네려 했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조금 따끔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그 순간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녀가 나를 향해 버럭 화를 냈는데 내가 본 것은 흰색이 섞인 커다란 줄무늬 호랑이가 나를 향해 어흥, 하고 앞발을 치켜들며 골을 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4살이나 어렸지만 호랑이는 그녀와 나를 합친 것보다 몇 배는 나이 들어 보였다. 호랑이는 나에게 자기 존재를 과시할 뿐 해칠 의향은 없는 것 같았다. 호랑이의 목표는 잘 달성되었다. 순식간에 제압된 나는 온몸을 웅크리고 엎드리는 것을 통해 그 순간을 모면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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