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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Mar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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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차산 둘레길



    아차산과 영화사의 울타리 경계쯤에는 내가 선호하는 오솔길이 있는데 오랜만에 그곳을 찾았더니 길은 많이 지워져 있고 나뭇가지가 얼기설기 앞을 가로막아 걷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좋은 등산로는 <길인 듯 길 아닌 길 같은 길>이어야 한다는데 그 오솔길은 길보다는 이미 산자락의 일부로 묻혀 가고 있는 중이었다.

    학학거리며 걷다가 요란하면서도 웅장한, 검은 철책 같은 시설물을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참 난데없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세상에나!”

    호기심 반 우려 반으로 가까이 접근해 봤으나 묘하게도 그 시설물에 곧바로 탑승할 방법은 도저히 없었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다음에 다시 오마, 하다가 그제 그곳을 또 찾아갔다. 이번에는 오솔길을 거치지 않고 그 시설물 입구를 일부러 찾아갔다. 시설물 설치 구간은 산 정상을 향한 코스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산 허리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둘레길이었는데 걸어봤더니 별로 흠잡을 데가 없었다. 평탄한 나무 바닥의 촉감에 기분이 째지게 좋아졌다. 거슬리지 않을 만큼만 삐걱이는 소리는 산바람소리와 섞이며 아름다운 효과음을 연출했고 활엽수와 소나무 가지를 손으로 직접 걷어내지 않고도 키 큰 나무들의 겨드랑이 사이를 시원스레 오갈 수 있으니 좀 과장을 하자면 구름을 타는 기분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게다가 발을 거는 돌도 없고 흙먼지가 있을 리도 없으니 가빴던 숨이 저절로 가라앉았다.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거고 평소의 습관은 여지없이 작동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다.  

    ‘공무원들로부터 결제를 받아내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한 게 아닐까.’

    그 시설물을 만들기 위해 얼마간의 예산이 들었을 것이고 설치하자 말자는 식의 찬반 의견까지 있었다면 여러 모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날은 이미 대공원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온 참이라 무리하지 말자며 길의 구조만 파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는 이정표와 팻말을 참고해 둘레길의 전체 규모와 그 시설물 구간을 파악해 보았다. 약 10분 간 걸어갔더니 시설물이 설치된 구간은 끝나고 기존의 등산로와 연결되는 지점이 나타났다. 숨차게 바위산을 타다가 말았다. 

    되돌아오는 길에 산등성이 군데군데 오솔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이어 <샛길을 폐쇄한다>는 푯말을 발견했다.  

    생각해 보니 오래전에 <희망노선>이라는 단어에 매료되었던 것이 아차산 등산로에서였다. 희망노선은 도시계획자들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국가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계획적인 길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체리듬에 맞는, 가고 싶어서 가게 되는 desire line이다. 

    나는 오래전 어떤 번역된 책에서 이 개념을 채취하였는데 당시 내게는 지나쳐서 거의 공해에 가까운 온갖 계획들에 대한 혐오감과 검열과 통제를 전제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라는 양가감정이 나란히 있었던 것 같다. 매일 산에 다니면서 사람들은 왜 이미 있는 등산로를 두고 자연을 훼손해 가면서 또 다른 길을 내는지 생각했으나 한편으로는 나 역시 길이 아닌 길을 헤매고 다니는 것을 은근히 선호하고 즐겼다. 

    아차산 둘레길에 새로 놓인 시설물은 샛길을 차단하기 위해 환경론자들이 제안해서 만들어진 설치물은 아닐까. 그와 같은 효용성이라면 결제가 떨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필이면 어떤 특정 구간에 시설물이 집중된 이유는 거기가 전철역이며 도로와 이어지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장소이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니 이건 끝없이 샛길을 갈망하고 발명하는, 그렇게 등산했을 때만이 산을 제대로 탄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견인할 수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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