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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Mar 09.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11. 거미



    지난 일요일, 몸집만으로도 영물스럽다 싶을 만큼 커다란 거미를 보았다. 밤늦게 집에 도착해 3층 계단을 수차례 오르내릴 때였다. 나는 여수에서 얻은, 열무로 만든 물김치와 방풍나물장아찌, 잘 숙성된 호박고구마 등을 나르고 있었다.  

    거미는 처음에 계단의 중간 어디쯤에 있었고 내가 오르내리는 동안 위치가 조금씩 바뀌었다. 짐을 다 나르고 나서 빗자루를 잡았다. 거미가 사람에게 밟힐까 봐 걱정이 되어 어떻게든 밖으로 내보낼 작정이었다.  

    거미는 첫 번째 비질로 계단을 세 칸 내려갔고 두 번째 비질로 거의 아래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세 번째 비질 이후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계단이나 계단 아래에는 다른 물건이 놓여 있거나 거미가 숨을 만한 구멍 같은 게 없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다. 플라스틱 숱으로 된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속을 살폈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촘촘하기 짝이 없는 빗자루의 결 하나하나를 샅샅이 뒤질 수는 없는 노릇. 이후 나는 내가 입은 옷이며 몸의 여기저기, 심지어는 머리카락 속까지 살피고 확인하는 짓거리를 한참 반복했다. 거미의 종적은 끝내 알 수 없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결국 거미가 몸을 효과적으로 말아 빗자루 속으로 숨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직접 확인이 안 되니 녀석은 어느새 내 안으로 들어와 나와 바인딩된 느낌이었다. 

    그 이후 사나흘이 흘렀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나는 내 안에 들어와 버린 거미의 환영에 시달리게 되었다. 영물스럽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벌레가 내 피부 위를 기어 다니거나 안으로 파고드는 그림은 매우 불쾌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이것도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소한 일들 모두가 납득 가능한 인과관계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닌데도 사람은 저도 모르는 사이 자꾸 그와 같은 식으로 생각하고 어떻게든 인과관계를 확보해내지 못하면 거기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시달리게 되는 것 같다.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이라도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니 넓디넓은 바다에서 가족을 잃어버렸는데 이유도 알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은 어떠할 것인가. 거미 한 마리가 그날이 며칠 안 남았다고 내 귓속 어디쯤에 숨어 자꾸만 속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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