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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Apr 04. 2023

내가 여기 있습니다

25. 영화 <프랑스 여자>를 보고



    주인공 미라는 배우가 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프랑스인 남자를 만나 파리에 눌러앉는다. 배우는 접고 다른 일로 밥벌이를 하며 20년을 살았는데 남편에게 새 애인이 생긴다. 상대여성이 미라와 가까이 알고 지냈던 한국 여성이라 충격은 더 컸던 것 같다. 그녀는 남편과 헤어지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미라는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 반갑게 회포를 풀다가 자신의 기억이 여기저기 끊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프랑스에 놀러 오면 늘 미라네 집에 머물곤 하던 영은이가 나비(고양이)는 잘 있느냐고 물어보면 “내가 말 안 했던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비는 내가 입원한 사이에 죽고 말았어.” 영은은 입원했었다는 말은 왜 하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미라는 그렇게 되었다며 웃어넘긴다. 사실 그녀는 프랑스인 남편과 이혼했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진짜 친구라면 병원에 입원했던 사건(더구나 유산과 관련된)이나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다는 것은 알고 있기 마련이다. 미라는 그런 경험조차 나누지 않고 살아왔다. 자신을 안으로 꽁꽁 싸매고 있다가 그 라인으로 타인이 침범해 들어오면 한껏 예민해져서 소리친다.

 

    “왜 우울을 같이 나눠야 해? 인간은 철저히 혼자야!”


    그녀의 프랑스인 남편도 말했던 적이 있다. 우리가 서로 감정을 나눴으면 좋겠다고. 영화는 미라의 이런 점에 포커스를 맞춘다. 


    미라는 여기저기 끊어져 있는 자신의 기억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아주 오래전 성우는 여자 친구 해란을 두고도 미라에게 집적거린 적이 있는데 20년 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미라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성우는 과거에는 해란이가 있었고 현재는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다. 프랑스인 남편도 그런 편이었다. 미라도 사랑하고 새로 사귄 여자도 사랑한다며 미라 너와 계속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싶으니 떠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 영화 속 남자들은 구제불능인 데가 있다. 

    성우와 사귀었던 해란은 자살한 상태이고 가끔 유령인 채로 미라에게 나타난다. 미라에게 유령인 해란의 출몰은 풀어야 할 아픈 숙제가 된다. 해란의 자살에 미라 자신이 일말의 원인제공자일 수도 있다는 자의식은 괜한 것일까.      

    과거 어느 날 미라는 모임이 있던 자리에서 바다가 보고 싶다며 즉흥적으로 말하고 곁에서 그 소리를 들었던 성우는 지금 당장 가자며 그녀를 잡아끈다. 둘은 바닷가 여관에서 함께 밤을 보내지만 남녀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었다. 

    미라가 성우와 함께 바다에 다녀온 사실을 알게 된 해란은 둘이 잤느냐고 다그치지만 미라는 애매하게 대처한다. 잤다고도 하지 않고 안 잤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의 마음은 내 것인데 왜 밖으로 드러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혼자 속으로 끙끙 앓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애인이 있는 남자와 바닷가에 가고 함께 밤을 보내지만 그때 일어난 자신의 감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도 잘 몰랐던 감정일 수 있다.   

    타인과 감정을 나누려면 성우와 함께 바닷가에 갔던 자신의 속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려야 하고 애매한 구석이 있다면 스스로 가부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다름 아닌 거기서 나온다.      

    미라가 자신의 감정을 말로 뱉어내지 않았다는 것은 단어를 선택하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성우와 바닷가에 가고 함께 여관에 드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데 구차하다고 생각했는지 내버려 둔 채 방치한다. 성우한테도 무관심했고 해란한테도 무관심했으며 자기 자신한테는 불성실했다. 무관심은 무책임이다. 그러니 지나온 모든 감정은 그 어느 것도 뚜렷하지 않은 채 긴가민가하게 남아 있다. 심지어 미라는 다시 만난 성우에게 이렇게 묻는 궤변을 펼친다. 

    “너랑 해란은 왜 헤어졌던 거니?” 

    성우는 일부러 그러는 거냐며 어이없어한다.  

    그때 둘이 잤느냐고 펄펄 뛰던 해란에게 나는 성우에게 관심 없고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 한마디만 해줬어도 해란이 내린 결론은 달랐을지 모른다.      

    말을 하고 감정을 나누려면 표현할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때로는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말로 뱉어내지 않은 것은 무의식으로 가라앉아 오래 기억될 수 없다. 감정의 나눔이란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셈이다.  

    유령이 되어 나타난 해란은 미라에게 말한다. 

    “언니, 조금만 기다려. 사람들이 곧 올 거야.”

    사람들이 온다는 것은 미라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임을 의미한다. 영화 말미에서 장면으로 보여주었듯이 20년 지기 남편을 잃는다는 것은 재난상황에 처한 것과 같다. 테러를 당한 것에 버금가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유령으로 나타난 해란이가 사람들이 올 거니까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자신과 똑같은 일을 당한 미라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해란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미라를 위로하기(구하기) 위해 돌아온 착한 유령이다.  

    누구도 삶을 혼자 버텨낼 수 없다. 안으로 꽁꽁 싸매기보다 서로 도와야 하고 감정을 나누어야 한다. 그럴 때만 나는 기억될 것이고 내가 여기 살아 있었음이 증명된다.  

    예쁜 생각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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