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인간조명
누구나 타인을 통해 괜히 좋거나 괜히 싫은 감정을 경험한다.
2017년 가을, 하루이틀 독일에 머문 적이 있는데 길에서 스친 사람들 때문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얼굴이며 몸에 불이 들어온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대체로 은은하고 잔잔한 미적 조명이었지만 가끔은 밝고 화려한 조명도 있었다. 호텔에서 마주 친 사람, 서점에 온 사람, 식당 옆자리에 앉은 사람 중에서 인간조명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고 독일 티브이로 독일사람을 봤을 때도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사진은 식당에서 마주 친 여든이 넘은 독일할머니시다. 저만치 혼자 앉아 계신 이 분을 봤을 때 온 몸에서 우러나는 밝은 기운에 압도 당해 다가가 말을 걸었고 허락을 구해 사진까지 찍었다. 지금은 아무리 살펴봐도 내가 그때 뭘 가지고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진 속 할머니는 여전히 밝은 느낌이지만 내가 그때 거기서 보았던 그 조명과는 차이가 있었다.
타자를 인식하는 출발점이 이와 같은 감각임을 전제한다면 사람의 주관이 왜 가끔 허무맹랑함을 넘어 섬칫함으로 다가오는지 조금은 유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