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원 케이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용어로 신경증, 히스테리아, 정신병, 도착증 같은 단어를 발굴해 냈는데 최근 실제로 정신분석 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니 그런 용어는 거의 사용을 안 한다고 했다. 대신 환자 한 사람을 <원 케이스>라고 불렀다. 이를테면 '그는 십만 케이스를 해결한 사람이다'와 같은 식이다. 해체주의 시대에 이르러 한 사람이 표출하는 증상이나 병증을 그 자체로 고유하다고 보게 된 것인데 여기서 도출되는 치료방법 역시 독립적으로 만들어진다. 나는 그동안 정신분석을 사유의 방법론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았고 누가 뭐라고 해도 치료방법으로써의 정신분석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사람 하나를 어디가 잘못되어 손을 보거나 수리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건 무섭고 불쾌한 일이다. 치료는커녕 오히려 남을 다치게 하는 흉기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원 케이스>라는 단어를 들은 이후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십만 명의 사람을 십만 케이스라고 부를 때 이론이나 방법론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이론이나 방법론에서 프레임이라는 독기가 제거되면 비로소 그것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된다. 이 중에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것이 있다는 믿음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가 자기를 볼 때 생겨나는 관점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