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뭐에 그렇게 신이 난 거야?
일주일 뒤인 오늘도 두 번째 모임이 있었고 B는 양추자에 대한 제압을 시도했다. 빛나가 두통을 호소하며 화장실에 다녀온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학과장이 나서 “양추자는 말을 줄여.”라고 한 것도 이전과 비슷한 양상이었으나 양추자는 여전히 반발하지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으며 말을 줄이지도 않았다.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양추자가 손에 잡히지 않자 빛나는 더 심각하게 두통을 호소하였고 마침내 10분 쉬자고 제안한 뒤 약국으로 가서 두통약을 사 먹고 왔다.
그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묘한 감정에 빠져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양추자가 빛나의 최신 표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양추자가 넘버원인 빛나를 제치고 왜 자꾸 주도권을 쥐려 하는지는 분명했다. 예술가적 어리석임에 도취된 양추자는 신바람에 떠밀려 자신이 열두 번째라는 처지를 자꾸만 망각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내가 과녁이었던 공간은 사라지고 새로운 장소의 문이 열렸다. 그런데 나는 뭔가 많이 허전하고 알 수 없는 장소에 혼자 내팽개쳐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더 이상 빛나의 표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왜 해방감이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지 나는 많이 의아했다. 그렇다고 빛나가 내 정신에 칼집을 넣고 흘러나온 피의 향기를 맡던 순간을 긍정하거나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샤워를 하고 잠깐 티브이를 시청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가 휴대폰으로 카페를 열었다. 모임이 끝난 지 세 시간가량 지난 참인데 벌써 글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양추자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이라고 했다.
양추자는 지난번처럼 “제가 좀 말이 많죠? 다음부터는 줄이도록 할게요.”라고 했는데 그 앞에는 놀랍게도 H에 대해 거론한 대목이 있었다.
H형, 제가 형을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고 하고 저를 소금이라고 비유한 거 오해 없길 바랍니다. 옹달샘에게 소금은 단지 오염원일 뿐이다, 뭐 그런 의미를 전달하려고 한 거랍니다 ㅎ
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세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늘 모임에서 H는 양추자가 계속 질문하면서 밀고 들어가자 논점에서 슬쩍 회피하고 몸을 도사렸는데 그것을 두고 양추자는 또 “난 소금이고 형은 물이다.”라고 밀어붙였던 것이다. 양추자는 자신이 했던 그 말이 뒤늦게 걸려서 보충 설명에 나선 것 같았다. 물과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가치 있는 것은 소금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물과 소금이라는 비유가 세 시간이 지나 깊은 산속 옹달샘과 소금으로 변형되고 만 사실의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글의 앞뒤 맥락을 오래 들여다보며 살폈다. 무엇보다 양추자가 H를 통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양추자가 말한 물과 소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개념이 달랐다. 오늘 새롭게 대두된 설명을 가지고 유추해 보면 깊은 산 속 옹달샘인 H는 소금을 달가워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오염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였다. 양추자는 H와의 관계에 관한 한 자신을 오염원이라고 이야기하는 셈이다. 물론 그 오염 역시 양추자의 자의적인 개념이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오염에 대한 개념을 버리지 않고서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것이었다. 도대체 양추자는 어째서 빛나 부류에게는 지나치게 방심하고 H에게는 턱없이 몰두하는가.
H에게 전화를 걸어 이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늦은 시간임을 확인하고는 포기했다. 대신 양추자에게 문자 두 개를 보냈다. ‘뭐에 그렇게 신이 난 거야?’와 ‘댓글 대신 보내는 문자야 ㅋ’ 예상과는 달리 곧바로 답이 왔다. ‘제 세상에서 저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문학을 하고 있어요. 재미있어요. 헤헤’라는 내용이었다. 예쁜 애이기는 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런 중얼거림이 흘러나왔으나 글자로 써서 보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