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7. 엄호

by 남상순



다음 날 학교에서 양추자를 한 번쯤 마주쳤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으나 하루 종일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일부러 찾아 헤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양추자에게 물어보려는 것은 ‘제 세상’에 관해서였다. 학과장은 예비 비평가들 중심으로 열두 제자 모임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거기서 하고 있는 것은 문학 연구가 아니라 개인의 식성을 토대로 한 혈투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연구 활동에 대비한 맷집 키우기식의 혈투인 것도 아니었다. 나 같은 부류는 거기서 삐져 나가자니 불안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아 혼자 몰래 소설이나 쓰면서,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소꿉놀이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양추자는 자신은 문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재미있다면서 말이다.

결국 세 번째 열두 제자 모임에 가서야 그녀를 다시 만났다. 10분 일찍 화양리 오피스텔로 들어갔을 때 양추자는 이미 와 있었고 다른 구성원들도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양추자 옆에 앉아서 지난번 전철 안에서 본 귀신은 스토리가 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수다가 와르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나는 엄지 척을 해 보인 다음 목소리를 낮추고 양추자 너는 이미 멋있는 작가인 거라고 말해 주었다.

“이 모임에서 네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작가적인 영감으로 가득 차 있어서 나한테도 꽤나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난 일주일 내내 네가 말한 것들을 곱씹고 네가 말한 것들에 젖어서 지냈어. 고맙다.”

레시피도 다르고 소스도 달랐지만 그건 위기에 처했을 때 H가 나한테 해 주었던 귓속말이었다. 그런데 내가 H 입장이 되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임의 한도를 위험하게 초과해 버린 당사자에게 그 초과분조차도 멋있다며 응원하는 것은 상대가 궁지로 몰리기를 바라는 행위인가 아니면 오직 선의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응원인 것인가. 이를테면 양추자를 보고 있는 내가 양추자에게 내보인 엄지 척이 이 모임 안에 설치한 나만의 플롯인지 나는 궁금하고 헷갈렸다. 그렇다고 내가 H의 행동을 모방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자연스러우면서도 저절로 흘러나온 나만의 대응이었다. 게다가 누가 시켰을 리도 없는데 나는 어떤 조급함에 떠밀린 채 H의 온기를 부랴부랴 양추자에게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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