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브랜딩, 마케팅이 흔한 시대가 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왜 해야 할까?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한 후에 나라는 사람을 ‘브랜딩 하는 남자’라고 소개한다. 나름 나라는 사람을 포지셔닝할 의도로 찾아낸 표현이다. 그런데 브랜딩이 뭐지? 브랜드와 관련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브랜딩이라고 하니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확 와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 ‘브랜딩 하는 남자’라는 표현은 잘 못된 것일까?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직업으로 살았고, 앞으로도 쭉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기획하는 일을 업으로 살 것 같다. 그래서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공부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 어렵게 느껴진다.
가끔 누군가에게 브랜딩에 관해서 설명하려고 하면 영어 단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럼 설명을 듣는 상대방은 낯선 용어 때문인지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설명하는 내용이 맞는 말 같고 또 이해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상대방은 내가 하는 말이 솔직히 뭔 소리인지 몰라도 이해하는 척해야 할 것 같아서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화가 끝나고 뒤돌아서면 금방 무슨 말을 들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궁금증이 생기면 또다시 관련 책을 뒤지거나, 전문가라는 사람의 동영상을 클릭하게 된다.
“브랜딩이 뭔가요?”
나라고 다르지 않다. 내가 아는 지식이 정답이랍시고 한참을 열 올리고 브랜딩이 어쩌고, 마케팅이 저쩌고, 떠들고 나면 상대방이 필요한 지식을 전달한 것 같아 성취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함이 밀려든다. 가끔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다시 또 관련 서적과 논문을 찾아본다.
“마케팅이 뭘까?”
요새는 마케팅 아닌 것이 없다. OOO 마케팅. 모든 단어에 마케팅이라는 한 단어만 붙이면 마케팅이 된다. 일단 마케팅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뭔가 제대로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이는지 다 갖다 붙이는 것 같다. 또 마케팅 전문가는 왜 이렇게 많은 걸까? 마케팅 전문가로 검색하면 모두가 자신이 마케팅 전문가라고 홍보하는 콘텐츠가 쏟아진다.
'이런 젠장 안 그래도 마케팅이 헷갈리는데 나에게 필요한 마케팅 전문가를 구별하는 것이 더 어렵다’
“마케팅 왜 해야 하는 걸까?”
마케팅과 브랜딩은 개념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이 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게 하는 가의 활동이다. 따라서 내가 말하는 방식과 상대가 느끼는 방식의 조화를 만드는 것이 브랜딩의 핵심이며, 이는 곧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목표가 있었다. 브랜딩 관련한 글을 써서 필요한 사람과 나의 지식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과 관련된 분야로 시작했다.
하루에 한 개의 글을 블로그에 발행했다. 글쓰기를 위해 성실하려고 노력했다. 이미 잘 알던 이론들을 정리할 때조차도 여러 자료들을 읽었고 최신 사례들도 찾아보았다. 새로운 이론들은 나 스스로가 이해될 때까지 계속 파헤쳤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하나씩 콘텐츠를 쌓아 갔다. 조회수도 괜찮았다. 그렇게 쌓여가는 글을 보면서 뿌듯했다.
“다 어디서 들어본 (뻔한) 이야기들이네요.”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들려온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이다. 충격이었다. 본인은 정작 나처럼 성실하게 글을 쓰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평가를 하나 싶어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하며 내가 쓴 글을 읽었다. 읽을수록 왠지 지인의 충고가 맞는 말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마케팅이나, 브랜딩이나 이론을 정리하다 보니 내 글은 딱딱할 수밖에 없다. 뭐든 이론은 재미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론이라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내 기분에 따라 형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니 읽는 사람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공감하지 못할 정도로 재미없게 글을 쓴 내 탓이 가장 크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는 것을 멈추었다. 뻔하지 않게 쓸 자신감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20년 넘게 현업에서 경험한 기획 노하우와 실제로 적용되는 이론들을 궁금한 사람들에게 알려주겠다는 처음의 명분도 흔들렸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갑자기, 그냥, 뜬금없이 한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2014년 tvN 금토 드라마 <아홉수 소년>의 OST의 곡 중 하나인 노래다.)
빌리어코스티의 ‘뻔한 사랑과 뻔한 이야기’
잘 지내라는 그 한마디
망설임 없는 너의 뒷모습
이해할 수도 없는 하루와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이
돌아서는 그 순간조차 사랑일 거라 믿었는데
그저 네게는 스치는 사랑인지
결국 그렇게 나를 잊어가나요
뻔한 사랑과 뻔한 이야기
그댄 다를 것만 같았는데
이젠 너 없이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다 믿었는데
나도 모르게 헤어지자는 깊은 한숨 섞인 그 한마디
너 없는 이곳
너 없는 하루
또 시작되는 그리움
사랑이라는 감정은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흔한 감정이자 가장 어려운 감정이다.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는 커플의 이야기도 제삼자에게는 뻔한 이야기일 때가 많다. 그리고 이별의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의 사연도 들어보면 대부분 뻔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사랑에 대해서 쉽게 조언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고, 저렇게 하면 되는 거라고. 정작 자신이 같은 상황에 처하면 더 어려워하고 힘들어할 거면서 말이다.
사랑, 흔하지만 어렵다. 떠돌아다니는 연애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 쉬운 것 같고, 막상 시작하면 실수하고, 그러다 실패해서 아파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하게 된다. 이번엔 다르겠지. 이 사람은 다르겠지.
문득 브랜딩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들으면 아는 것 같은 뻔한 이야기들인데, 왜 실제로 적용하려면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남들은 다 제대로 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왜 헤매고 있는 걸까? 때로는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움이 앞선다. 그런데 사랑은 실패해도 계속하면서 비즈니스는 한 번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선뜻 다시 하기 쉽지 않다.
뻔한 사랑도 못 하면서 특별한 사랑을 찾는 것은 아닐까?
뻔한 브랜딩도 못 하면서 특별한 브랜딩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멋지고 폼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멋지고 폼나는 브랜드가 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브랜드가 되면 어떨까?
이제부터 흔해 빠진 사랑 이야기처럼 우리 삶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뻔한 브랜딩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도 처음엔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졌고, 실제로 브랜드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사람들과 나의 브랜드 사이에서 어떻게 '소통'하느냐를 배우는 여정이었다.
브랜딩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예술이다. 그렇다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사람들이 제대로 듣고 있을까?
이 책은 브랜딩이란 어려운 과제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더 근본적인 개념으로 연결시키는 여정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고 쉬운 브랜딩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과 비즈니스에 어떻게 스며드는지 함께 나눌 것이다.
뻔한 일상, 나만의 브랜딩... 앞으로 계속 만들어갈 이야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