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대학에는 탄뎀이라는 수업이 있다. 독일어로 탄뎀은 2인용 자전거를 뜻하는 단어로, 내가 다니는 대학에서는 외국인 유학생과 한국인 학생이 짝을 지어 교류하며 서로의 모국어를 가르쳐주는 학습을 의미한다. 다소 모르는 사람과 지내는 데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런 경험은 꼭 외국어를 배우면서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탄뎀 수업을 신청했고, 면접을 거쳐서 탄뎀 수강 수업에 합격했다. 처음 탄뎀 수업에서 나와 짝이 된 일본 유학생이 여학생이라 당황했지만, 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수업 내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더욱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외국어를 배우고,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일은 대단히 공부가 되는 일이었다.
나보다 어리기는 하지만, 20대 여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일조차 사례를 찾기가 어려운 나에겐 한 시간 한 시간이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수업 3주 차에는 현장체험학습을 통해서 실외 수업을 해야 했다. 현장체험학습은 외국인 유학생 친구와 함께 관광지 혹은 가고 싶은 것을 함께 가고, 그 활동일지를 보고서로 작성하는 일이다.
말은 현장체험학습이지만 두 명이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면 엄청 불편할 것 같았다. 시중에서는 이런 상황을 데이트라고 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러한 상황에 부담을 느꼈고, 분명히 상대방 또한 나처럼 훈남이라는 단어와 등을 돌리고 사는 사람과 보내기에 불편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시급히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다행히 나와 짝이 된 여학생의 친구가 같은 교실에 있었다. 여학생의 친구 또한 한국인 남학생과 짝이 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팀에 '함께 현장체험학습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다행히 그 또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흔쾌히 수락했고, 얼굴조차 몰랐던 두 명의 남학생과 두 명의 일본인 여학생이 인연을 맺게 되었다.
우리 네 명이 함께 가기로 한 곳은 블로그를 통해 얼굴을 튼 분이 일하시는 해운대에 있는 방 탈출 카페였다. 한국에서 방 탈출 카페는 상당히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우후죽순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한번 체험해보고 싶기도 했고, 방 탈출 카페를 가면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서 서먹함이 없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관계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친해지기 위해서는 함께 공동 작업을 하는 게 가장 유용하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었다. 방 탈출 카페는 공동 작업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해운대라는 위치는 바다를 비롯해서 맛집이 있기도 해서 최적의 장소에 가까웠다.
방 탈출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이 선뜻 무료로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딱히 이런 걸 예상하고 선택한 일은 아니지만, 작은 인연을 통해서 조금 더 마음을 가볍게 먹고 계획을 진행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스태프가 있어서 다소 난해할 수도 있던 진행을 옆에서 도와주셨서 큰 힘이 되었다.
우스운 일은 그 방탈출 카페의 사장님 또한 부인 분이 오사카 사람이라고 했다.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면서 짧게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인연이라는 게 참으로 묘했다. 일본인 유학생과 함께 방 탈출 카페를 방문했더니 또 그곳에 뜻하지 않은 인연이 또 이어졌다. 이래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학에서 이렇게 유학을 온 일본인 여학생들과 방 탈출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겼고, 함께 파스타 가게에서 저녁도 먹었고, 멋진 야경을 그리는 해운대 밤바다를 구경했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정말 탄뎀 수업이 아니라면 절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가능하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날 나의 놀라운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밤에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여학생과 지하철 역에서 헤어지고, 김해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해운대 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놀라운 만남이 있었다. 김해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고교 동창생을 바로 그곳에서 만난 것이다. 그것도 무려 3년 만에 만났기 때문에 대단히 놀라웠다.
그 친구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는데, 둘 다 말도 안 된다면서 굉장히 놀라워했다. 해운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고시를 합격해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카카오톡으로 '주말에 해운대 벡스코에 행사 있어서 가게 되면 연락할게. 맛있는 거나 사도.'라고 보낸 게 8월 15일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막상 만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났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희한한 일이었다. 친구는 "내일 아침에 가도 되지만, 그냥 오늘 가려고 급하게 나온 거였다. 근데 다 와서 보니까 니 같은 애가 있더라고."라고 말했다. 참, 이렇게 인연이 겹겹이 연결되는 게 사람의 삶인 것 같다. (웃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그래서 사람은 어디서 함부로 하면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어디서 어떻게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우연히 만난 사람이 또 다른 사람과 연결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사람의 인연은 거미줄처럼 퍼지면서 인연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다. 그걸 새삼 느꼈다.
아직도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서툴다. 이번에 일본인 유학생과 함께 다니면서도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함께 간 다른 한국인 학생인 후배가 열심히 대화를 이끌면서 "형도 이야기 좀 하세요."라고 말했는데, 아직 재주가 너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일 때가 많고, 일부러 나서서 모르는 사람과 만나는 일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는 걸 느꼈다. 이날을 계기로 좀 더 웃게 되고, 사람과 만나서 시간을 자연스럽게 보낼 수 있게 된다면, 나는 한층 더 성장한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인연은 늘 느닷없이 찾아오는 법이고, 옷깃만 스쳐간 만남이 또 어떻게 재회하게 될지 모르는 법이니까.
이때까지 만난 모든 사람들의 인연과 앞으로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인연에, 행복한 웃음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