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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Sep 17. 2016

아리마 코우세이처럼, 미야조노 카오리처럼



 나는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26살의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이제 1년 반 정도 배우면서 "나 피아노를 취미로 하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 수준이 되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습한 처음에는 언제 피아노 곡 다운 곡을 연주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다행히 지금도 제대로 곡을 연주하는 일은 어려워 상당히 고생하고 있다.


 유치원 시절에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 당시에 어린이 피아노 대회가 있을 때 나갔던 적도 있다고 하는데, 성인이 된 지금은 그 시절을 전혀 떠올릴 수가 없다. 어렴풋이 내가 피아노를 배웠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도대체 내가 피아노로 어떤 곡을 연주했는지 어떻게 연주를 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26살의 늦은 나이에 시작한 피아노는 도레미파솔라시도 연주부터 시작했다. 처음이 중요하다고 한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손목에 힘을 빼는 연습, 자연스럽게 건반을 이동하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기초 연습은 언제나 지겨운 법이고, 멋도 모르는 초보자가 화려하게 연주하는 망상만 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건 이런 것 같다.


 내가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다. 애니메이션에서 들은 곡을 직접 연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연주하는 일은 먼 꿈으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는 건 대단히 금방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한동안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4월은 너의 거짓말>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피아노 학원에 곧장 레슨을 등록했다. 그동안 열심히 모은 돈으로 전자 피아노 야마하 P105를 구매했다. 피아노를 구매하더라도 도레미파솔라시도 하나 제대로 칠 수 없었지만, 더는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직접 옮길 수 있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내가 진심으로 홀딱 반한 작품이었다. 남자 주인공 아리마 코우세이와 여자 주인공 미야조노 카오리가 만든 슬픈 합주는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다. 음악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마주하고, 음악을 통해 헤어지고, 음악을 통해 어른이 되는 <4월은 너의 거짓말>은 거짓말 같은 감동을 마음 깊은 곳에 전해주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을 보면서 나는 '왜 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걸까?'는 질문을 해보았다. 단순히 멋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 피아노를 배우면서 웃고 싶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곡을, 도전해보고 싶은 피아노 곡을 연주해보고 싶었다. 멋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였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유는 없는 돈을 열심히 쪼개어 나를 위해 투자할 만큼의 가치 있는 이유다. 사람의 인생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비로소 앞으로 전진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나는 늘 마음이 허전했다. 정말 내가 가슴이 뛰는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새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배우고, 성인용 피아노 교재를 통해서 천천히 기본기를 익히면서 연주하고 싶은 곡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시도한 곡은 어릴 적에 본 애니메이션 <작은 눈의 요정 슈가>의 여자 주인공이 엄마를 떠올리면서 연주한 'Memory of Mother'라는 곡이었다. 이 곡은 너무나 따뜻해서 꼭 연주를 하고 싶었다.


 내가 연주를 연습하기 전에 선생님이 악보를 가지고 연주를 해주셨다. 역시 직접 듣는 'Memory of Mother' 피아노 곡은 너무나 좋았다. 피아노 선생님은 그렇게 어려운 곡이 아니기에 금방 연주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처음에는 왼손과 오른손을 바로 사용하기 어려워 오른손으로 연습하고, 그 이후 왼손을 섞어 연습했다.


 피아노를 배우는 초기에는 하루 6시간을 연습했다. 기본적인 테크닉을 연습하고, 교재에서 배운 과제곡을 연습하고, 연주하고 싶은 'Memory of Mother' 곡을 연습했다. 처음에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았지만, 연습에 투자한 시간은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 금방 피아노 선생님의 말씀대로 'Memory of Mother'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연주하고 싶은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연습을 하면서 도무지 쉽게 나아지지 않아서 고생을 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나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내가 피아노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그렇게 재미있냐?"라며 말을 거실 정도로 피아노 연습을 하는 내 입이 귀에 걸려 있었던 것 같다. (웃음)


 'Memory of Mother' 곡을 익히고 나서 나는 차례대로 다음 애니메이션 곡에 도전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곡만 아니라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클래식 곡에도 도전했다. 제일 먼저 도전한 클래식 곡은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이다. 'Memory of Mother' 보다 템포가 더 빠르고, 지금 익힌 기초 테크닉보다 더 확실한 테크닉을 요구했다.


 어려웠다. 괜히 클래식 곡을 연주해보고 싶다고 말한 것 같았다. 그래도 더 많은 곡을 연주하고 싶은 것은 내 욕심이기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까스로 터키 행진곡 악보를 손에 익히는 데에 성공했고, 완성도는 아직 떨어지지만 지금도 꾸준히 연습을 반복하고 있다. 그 이후 나는 베토벤의 월광을 비롯해 곡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 OST 3개를 부드럽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클래식 곡 2개를 매일 반복해서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새롭게 도전하는 애니메이션 곡 한 개는 6개월째 제대로 연주를 어려워하고 있고,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모차르트의 작을 변 변주곡을 연습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곡은 모두 어렵지만, 그래서 더 즐겁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피아노에 뭘 담아 치고 싶어?", "무엇을 위해 피아노를 치고 싶어?", "너는 어떻게 치고 싶어?"


 모두 피아노를 치는 이유에 대한 말이다. 단지 있는 힘껏 힘으로 피아노를 친다고 해서 좋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글을 쓸 때도 무작정 미사여구를 붙인다고 해서 좋은 글이 되지 않는 것처럼. 글을 쓸 때도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은지 이유가 중요하고, 피아노를 칠 때도 곡에 담고 싶은 마음이 중요하다. 기술이 있어야 마음도 표현할 수 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대학 일정에 쫓겨 바빠 연습 시간이 너무 없어졌다. 짧은 시간으로 연습을 해도 도무지 연주 실력이 나아지지 않아 스스로 답답할 때도 많았다. 타고난 재능이 없음을 탓하기도 했고, 연습 시간을 더 늘려서 연습하지 않는 나를 탓하기도 했다. 피아노 연습을 하는 것은 무기력한 나와 도망치는 나와 마주하는 일이었다.


 도망치고, 거기서 '나는 이 정도로 만족하면 돼. 어짜치 취미잖아?'라며 멈출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고, 아직 도전해보고 싶은 곡이 너무 많았다. <4월은 너의 거짓말> 주인공처럼 화려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더라도 그런 연주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집에서 대학 공부를 할 시간이 없더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남은 시간은 모조리 피아노 연습을 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그래 봤자 평일은 겨우 1~2시간에 불과하고, 주말은 3~4시간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연습량의 부족과 피아노에 담긴 마음의 부족.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해나가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다.


 어차피 취미이기에 만족할 수 있지만, 나의 욕심은 전혀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4월은 너의 거짓말>의 주인공 아리마 코우세이처럼, 미야조노 카오리처럼 진심 전력을 다 쏟아서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이 꿈은 마음을 담은 글을 쓰는 블로거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는 거다.


 주말인 오늘도 나는 아침에 피아노 연습을 시작할 것이다. 연습을 끝마치면 점심을 먹은 이후에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좀 더 다채로운 색을 칠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피아노 연주는 절대 멈출 수가 없다. 하고 싶은 일이기에 어려워도 포기할 수가 없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의 두 주인공처럼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이니까. 나는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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