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살다 보면 좋든 싫든 여러 가지 소음에 노출되는 일이 많다. 종종 뉴스를 보더라도 층간 소음이 계기가 되어 이웃 간에 다툼을 벌이거나 심지어 살인 같은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조금 더 사람을 서로 배려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조심한다고 해도 층간 소음 갈등은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으면, 윗집인지 옆집인지 출처를 분명하게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 특히 어떤 집은 망치를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의자 혹은 가구를 옮기는 긁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겨우 몇 분 정도면 참을 수 있겠지만, 며칠이고 반복이 되면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어떤 때는 아무런 사전 공지 없이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피해를 주는 세대도 있다. 아파트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하거나 부분적으로 집을 고칠 때는 사전에 공지를 해주는 게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의 최소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고, 각종 소음을 일으키곤 한다.
한때는 너무 시끄러워서 올라가 보니 윗집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사람을 불러서 "왜 말이나 어떤 안내사항 없이 공사를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자신은 그냥 일하는 사람일 뿐이라면서 집주인에게 말하라고 했다. 분명히 그 말도 맞기는 하지만, 업체 측도 기본은 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집 같은 경우에는 공사를 하는 업체가 엘리베이터 안 공지 게시판에 '며칠부터 며칠까지 공사를 한다고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빨리 끝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이라는 메모를 A4 용지로 프린터를 해서 붙여놓았었다. 이건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이런 일을 하지 않는 업체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십 원이 들어간 욕이 나올 것 같았지만, 상대방은 위험한 흉기가 될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어서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본래 남자는 한순간 머리가 빡 돌 정도로 화가 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일지 모르는 존재다. 더욱이 그런 공사를 하시는 분의 입장도 알기에 그냥 돌아섰다.
아마 이런 일이 쌓이고 쌓이다가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게 층간 소음 갈등이 아닌가 싶다. 단순히 층간 소음만 문제가 아니라 층간 흡연 또한 대단히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가만히 쉬면서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느닷없이 담배 연기가 포복 행진으로 들어오면 굉장히 불쾌하다.
층간 흡연 문제는 '내 집에서 내가 담배 피우는데, 뭐가 잘못됐어?'라고 따질 수 있어 뭐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사람의 환경권을 위해서 모두가 당연한 도리를 지킨다고 한다면, 선량한 미풍양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지만,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그런 모습이 꽤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드문 모습이 종종 현실로 볼 수 있을 때는 상당히 기분이 좋다.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저녁 시간에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윗집에서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쿵쿵하면서 났다. 한 5~10분이면 끝나겠지 했지만, 좀처럼 끝나지 않아 윗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문을 두드리기가 조금 망설이다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서 올라가서 문을 두드린 것이다. 다행히 문을 연 아저씨께 "아랫집에서 왔는데요, 자꾸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요. 뭘 하고 계시나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아저씨는 미처 그 생각을 못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사과를 하셨다.
그 이후 거실 바닥에서 두드리던 소리를 베란다에 옮겨서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금방 일을 마치신 듯했다. 새로 이사 오신 분이라서 조금 얼굴을 붉힐 일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일은 원만하게 잘 풀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또 한 번의 방문을 나는 다음날에 받게 되었다.
거실에서 야구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나는 TV 소리가 너무 커서 아랫집에서 올라왔나 걱정을 하며 문을 열었는데, 아이를 안은 한 아주머니가 윗집 사람이라면서 케이크를 건네주셨다. 어젯밤에 갑자기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면서 케이크를 사 오셨던 거다.
나는 순간 놀라서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요."라고 황급히 고개를 숙이면서 사례의 말을 했지만, 아주머니 또한 "아니요, 아니요. 요즘 애가 조금 아프기도 해서 아마 계속 시끄러웠을 거예요."라며 사과의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런 부분은 이해하겠다고 말하며 사과를 받았다.
이때까지 몇 번이고 층간 소음으로 서로 지적한 일은 있었지만,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확실히 나는 이런 해결책이 좋다고 생각했다. 서로 지적을 했다가 '다음에 네가 시끄러우면 두고 봐라!'라고 화를 품고 있기보다 서로 좋게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하는 게 최고이지 않을까? 같은 사람이니까.
내가 받은 케이크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였다. 어떻게 내 취향까지 아셨을까 싶었다. 초콜릿은 싫어하는 사람이 더 적으니 무난하게 고르신 게 아닌가 싶었다. 덕분에 작은 초콜릿 케이크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달콤한 초콜릿을 맛보면서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달랠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이 함께 어울리며 산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서로가 조금만 배려하고, 조금만 사과의 말을 제때 할 수 있으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고 하고, 먼저 사과하는 사람에게 떠 따질 수 없는 게 당연한 섭리다.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서면, 화를 낼 일도 없어질 테니까.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이기주의가 너무 만연하고 있다.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 차별을 어른들이 하면서 아이들도 똑같이 배우고 있다. 그러한 차별은 이기주의로 이어지고, 결국 사람이 가져야 할 배려와 기본적인 교양을 배우지 못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분노 조절 장애 사회가 되는 것이다.
층간 소음으로 서로 흉기를 휘두를 정도로 악화한 사례를 보면 너무 안타깝다. 서로 할 발자국만 뒤로 물러서서 먼저 사과를 하고, 양해의 말을 구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 아무쪼록 우리 사회가 '뭣이 중요한데?'라는 말을 잊지 않고,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부터 챙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