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 건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바람이 불어와 산의 나무가 흔들리고, 새들이 나누는 저마다 이야기가 들린다. 마치 이곳에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가 남아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잠시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나는 사람들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렇게 잠시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서 "이놈의 인생 왜 사는지 모르겠다. 확 죽어버려야지!" 같은 말을 하면서 인사불성의 상태로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아니라 시간이 있는 주말이나 어느 때라도 잠시 멈춰보는 거다.
흐르는 시간을 멈출 수 없지만, 우리는 잠시 멈춰서 시간을 되돌아볼 수는 있다. 시간을 되돌아보는 게 낭비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시간을 되돌아보는 행동을 통해 더 멀리 있는 시간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람의 삶은 짧고, 지독한 근시안을 가지고 있어 때때로 멀리 볼 필요가 있다.
오늘 글을 쓰는 9월의 가을은 잠시 멈춰 서서 생각에 빠져들기 좋은 계절이다. 나 또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있을 대학 과제를 챙겨야 하고, 아직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일본어 저널 9호도 펼쳐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해서 굉장히 바쁘다. 그래도 오늘 이 시간만큼은 잠시 멈춰서 생각하고 싶다.
버킷리스트.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뜻하는 버킷리스트는 잠시 생각에 빠져 있으면 문현득 떠오른다. 가장 단순하게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유명한 셰프가 만드는 요리를 먹고 싶다'부터 시작해서 '곧 있으면 단풍이 들 일본 교토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싶다'는 단순한 일이다.
굉장히 거창한 일이 몇 가지 떠오를 것 같았는데, 막상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니 겨우 이 정도의 일이다. 비록 이런 일들이 커다랗게 세상을 움직이거나 내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가지고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죽기 전에는 꼭 한 번 해보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해보고 싶은 일이다.
내가 죽기 전에 당장 해보고 싶은 일들. 정말 많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막상 뭘 하고 싶은지 글로 옮기거나 말로 하려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냥 욕심만 품고 있었던 일은 버킷리스트라 말할 수 없고, 정말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잘 알지 못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인 걸까?'는 의문이 붙는다.
어쩌면 뜻밖에 나는 별로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 좁은 울타리 안에서 책을 읽고, 그을 쓰면서 경험을 너무 적게 한 탓일까?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할수록 하고 싶은 일이 만아진다는 걸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분명, 내가 내 삶을 더 크게 키워가는 데에 있어 아직 경험이 적었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손을 뻗으면 닿는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들, 구글을 띄워서 검색하면 얻을 수 있는 정보 중에서 흥미가 있는 것들 뿐이다. 나름 외국어 대학교에 다닌다고 하지만 작은 흥미로 시작한 일본어는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것 외에 쓰지 않았다. 정말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화려하게 적어보려고 해도 화려하게 적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건 구글로 검색을 해보았고, 직접 가보지 않아도 블로그 여행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체험을 했다. 그탓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진심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적은 것 같다.
지금 잠시 귀뚜라미와 풀벌레들이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른해진 몸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그냥 내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남에게 간섭을 받지 않고, 내 일을 하며 그럭저럭 살고 싶었다.
커다란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 어쩌면 내가 가진 소박한 욕심이 커다란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뿐이었다. 내가 버킷리스트를 적는다면, 그 첫 번째로 적는 일의 주제는 바로 '자유'와 관련된 일일 것이다. 자유롭게 혼자 여행을 가거나 자유롭게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등.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뭘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언제나 무작정 '아, ~하고 싶다. ~하고 싶네. ~하면 즐거울 것 같아'라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쭉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중에서는 그냥 막연히 생각한 것도 있었고, 정말 내가 내일 죽는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의 무게와 크기와 가치를 비교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드림멘토 김수영은 어떤 일이라도 꿈꾸고, 자신이 하고 싶은 꿈 리스트를 만들어서 실천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그러면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어느덧 생각이 거기에 미친 나는 여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무작정 적어보기로 했다. 이 일은 버킷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이고, 내가 이루고 싶은 꿈으로 연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 자유 여행 가기, 아키하바라 가기, 일본 애니메이션 녹화장 구경하기, 일본 애니메이션 게스트 성우로 참여해보기, 구글 코리아 방문하기, 구글 본사 방문하기, 페이스북 본사 방문하기, 이연복 셰프 식당 가서 밥 먹기, 내 책 쓰기, 비정상회담 출연하기, 일본에서 라이트 노벨 쓰기, 일본에서 1년 살아보기, 모델과 스튜디오 촬영해보기, 피아노 콩쿠르 입상하기, 연주회에 출연하기, 만나고 싶은 연예인 10명이랑 사진 찍기, 내 이름의 도서관 세우기, 대안학교 세우기...
문득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일들을 잠시 고민해보면서 적었다. 꽤 많을 것 같았지만,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아는 일의 범주 내에 다 들어갔다. 일본 도쿄 자유 여행을 가면, 아키하바라 또한 자유롭게 가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일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찾는 일은 꽤 어려운 일이다.
스튜디오 건물은 밖에서 구경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장소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원작자와 만나서 이야기가 나누어보고 싶고, 애니메이션 성우도 만나보고 싶다. 일본에서 하고 싶은 많은 일은 역시 일본에서 1년 정도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본에서 살면서 애니메이션과 라이트 노벨 관련 일을 해보고, 할 수만 있다면 일본에서 일본어로 라이트 노벨을 직접 써보고 싶기도 하다. 만약 내 작품이 잘 팔리는 인기작이 된다면, 애니메이션화까지 바라보면서 직접 프로듀스를 할 수 있는 행운도 생길 테니까. 역시 꿈은 커야 한다! (웃음)
그 이외에 가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블로그를 통해서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들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나에게 먹고살 수 있는(사실은 꽤 간당간당하게) 돈을 주는 구글 애드센스와 구글의 모든 것이 있는 구글 본사를 방문해보는 일은 꿈같은 일이다. 도대체 그곳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바쁜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잠시 멈춰 서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는 일은 꽤 즐거운 일이다. 실천하기 힘든 일도 있지만, 실천할 수 있으면 정말 대박인 일이다. 죽기 전까지 한 번은 도전해보고, 아니, 몇 번이나 도전해보고 손이 닿을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싶은 일들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쌓여있고, 오늘이 너무 숨 가쁘게 돌아가더라도 잠시 멈춰 서서 버킷리스트를 생각해보자. 누구는 바보 같은 생각이나 하지 말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잠시 나에 대해 물어보고 생각해보는 것으로 '내가 놓친 진짜 내 삶,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며 떠날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짐을 쌀 계획만 몇 번을 세웠다. 도대체 이놈의 현실은 왜 이렇게 괴로운 것인지.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하다 보니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죽기 전에는 하지 못할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포기하면 정말 거기서 끝이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은 발버둥을 애써 쳐보고 싶다. 대학에서 배우는 일본어는 착실히 내실을 다져줄 것이고, 열심히 쓰는 글은 내 책 쓰기와 이어져서 도전하는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꿈은 생각하고, 추구하는 자만이 이룰 수 있는 법이다.
김수영 씨는 삶의 무게를 너무 짊어지려고 하면 무너지는 법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이룰 필요도 없고, 지금 당장 이룰 필요도 없다. 아직 우리가 살아갈 날은 많이 남았다. 그 남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며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 진짜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방법이 아닐까?
이 글을 적은 나와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독자가 버킷리스트를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나와 당신은 분명히 버킷리스트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자신이고,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절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할 수 있다'를 세 번만 말해보자.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