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거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는 1년을 거의 혼자서 보낸다. 사람들은 주말이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거나 연인을 만나거나 가족과 함께 하다 못해 작은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 낯설고, 솔직히 불편함까지 느끼는 모습이다.
아직 한창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지내야 할 나이인 20대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이런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닌 것 같다. 많은 20대가 취업 준비를 하느라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가족끼리 만나는 자리도 죄책감이 들어서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점점 살아남기 어려워지면서 생긴 일종의 새로운 흐름이다. 덕분에 요즘은 혼술을 하는 사람도 상당히 늘었고, 일부 고깃집은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서비스도 내놓고 있다고 한다. 점점 일본처럼 혼자 생활을 즐기는 게 익숙해지는 것 같지만, 원래 한국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그런데 내가 혼자 보내는 시간을 이런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무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취업 준비를 하느라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가족끼리 만나는 자리도 죄책감이 들어서 가지 않는 게 아니다. 그저 혼자가 편해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너무 모여있으면 그 자리가 불편해서 가족끼리(특히 친인척) 모이는 자리는 가지 않는다.
내가 친구가 별로 없는 이유는 친구를 만들려고 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 사람과 거리를 가깝게 지낸다는 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거리를 걷다 보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어디 놀러 가기도 하고, 굳이 만나서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오랫동안 주고받는 모습을 본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번도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가끔 혼자서 시간을 보내다가 심심하거나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해두고, 해야 할 일을 온종일 행동으로 옮기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이 글을 쓰는 오늘 10월 1일은 내 생일이다. 하지만 생일이라고 해서 전날에 친구들을 만나서 축하 파티를 한다거나 저녁에 여자 친구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런 계획은 없다. 오늘도 어느 날과 다름없이 평화롭게 혼자 아침을 먹고, 피아노 연습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를 반복할 뿐이다.
만약 10월 1일이 평일이라면 대학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일이 추가가 되었겠지만, 다행히 10월 1일은 토요일이라서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런 삶이 무슨 재미가 있고, 어디에 행복이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특별한 재미와 특별한 행복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특별한 재미와 특별한 행복이 없는 삶이 꼭 잘못된 삶인 걸까? 특별한 재미와 행복이 없더라도 사람은 웃으면서 지낼 수 있다. 사람은 꼭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재미있다고 느끼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아니다. 그저 오늘 소박하게 살아가면서 그럭저럭 살 수 있으면, 바로 그게 사는 행복이다.
예를 들면, 내가 주말 아침마다 2~3시간 연습을 하는 피아노가 그렇다. 매번 목표로 세운 곡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게 되면, 나는 그 시간이 무척 재미있을뿐더러 '해냈다!'는 성취욕을 느끼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그래서 좋다.
나도 가끔 사람과 어울려 왁자지껄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함께 특별한 일을 하면서 특별한 즐거움과 행복을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을 해도 그런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사람들과 시끄러운 장소에서 왁자지껄 웃으면서 있는 나라니. 상상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웃음)
자주는 아니지만 때때로 그런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정말 오랜만에(이때는 반년에서 1년 정도) 아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어느 정도 시끄러워지는데, 그렇게 보내는 시간도 1시간 이상을 견디는 일은 어렵다. 나는 사람과 어울려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적었고, 항상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으니까.
왜 이렇게까지 내가 혼자가 되고 싶어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동양북스의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내가 회피형 인간이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릴 적에 겪은 학교 폭력과 가정 폭력, 부모님이 자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란 나는 사람을 기피하는 동시에 너무 질렸기 때문이다.
단순히 머리가 커지지 않은 시기에 한정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게 아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심지어 내가 군 훈련소에 입소할 때까지도 그런 모습은 계속되었다. 그러니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회피하게 되고, 사람이 지나치게 모이는 곳에 가면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뒤죽박죽이 된다.
내가 가자 평화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혼자 있을 때라는 걸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몸에 익히게 되었다. 혼자 있으면 사람과 부딪힐 일도 없고, 억지로 웃으면서 그 견디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껏 할 수 있다. 필요하면 사람을 만나면 될 뿐, 일부러 사람에 섞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혼자서 삶을 살아간다. 삶을 살아가는 건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인연과 함께 가는 삶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꿋꿋이 혼자서 걸어가고 있다. 도중에 많은 사람을 만나서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고, '특별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경험과 시간을 함께 나눈 적도 있었다.
스쳐 지나간 그 모든 인연과 짧은 시간은 충분히 쌓여있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혼자서 삶을 살아가는 걸 고집하면서도 간간이 사람과 만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재미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은 삶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시간이 평화롭고, 즐겁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감정은 언제나 상대성의 개념이다. 내가 재미있고 행복한 일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이 똑같이 재미있고 행복할 수는 없다. 모두 저마다의 재미와 행복이 있는 법이다. 나는 단지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나의 재미와 행복을 누리는 요건일 뿐이다.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피아노 연습을 하는 시간이….
변하지 않는 이 일상이 따분하게 느껴질 때는 가끔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준비를 하기도 한다.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정말 곁에 누군가를 필요로 해서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연애'에 손을 뻗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라는 인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오늘 10월 1일, 나는 내 생일을 맞아 어제 어머니께 사준 초콜릿 케이크를 냉장고 구석에 놓아둔 채, 절에 간 엄마와 밖에 놀러 나간 동생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글을 쓰고, 읽어야 할 책을 읽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피아노 연습을 하고, 야구를 보고, 종종 나와 대화하면서….
오늘도 그렇게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