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글
처음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적은 자기소개에 ‘히키코모리증 오타쿠’라는 말을 사용했다. 집에서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특징을 가진 나는 히키코모리에 어울렸고, 애니메이션과 만화, 라이트 노벨 같은 문화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오타쿠라는 말이 어울렸다.
‘오타쿠’라는 말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퍼진 말이다. 이 말은 일본어 오타쿠(オタク)에서 유래했다. 일반적으로 1970년대에 일본에 나타난 서브컬처의 팬들을 가리키고, 독특한 행동 방식,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고 한다.
‘히키코모리’라는 말은 방이나 집 등의 특정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거나 나가지 않는 사람과 그러한 현상 모두를 가리키는 일본의 신조어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는 보통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로 자주 사용되며 한때 사회 문제로 떠오를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약간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단어이지만, 나는 이 두 단어가 나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내가 있는 것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살아가는 희망을 얻었기 때문이다.
만약 애니메이션이 없었다면, 나는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괴롭게 살아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조금의 과장도 없다. 미쳐버릴 것 같았던 삶에 웃음을 되찾게 해주고, 심지어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준 최초의 계기가 바로 애니메이션이었다.
애니메이션을 꿈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에 반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내가 꿈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일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일단 책을 읽으면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아닌 책을 통한 지혜를 얻고자 했다.
중학교 시절 이후 학원에 다니는 일을 제외하고서는 온종일 집에서 애니메이션 채널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책을 읽는 데에 시간을 투자했다. 당시 또래가 하는 온라인 게임에 빠진 적도 있지만, 온라인 게임보다 소설을 읽거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일이 더 즐거웠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은 내 삶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 첫 번째이자 가장 큰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홀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면서 단절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바로, 은둔형 외톨이 수준으로 밖을 나가지 않게 된 점이다. 어릴 적에 겪은 트라우마로 사람을 만나는 일을 대체로 꺼리는 데다 계속 집에서 애니메이션과 만화책, 소설만 읽다보니 더 심해진 것이다.
솔직히 은둔형 외톨이 수준으로 밖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대인기피증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이 많은 곳에 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했다. 특히 사람들의 소음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장소는 내가 피해야만 하는 장소 중 최우선 순위에 해당했다.
과거 <지식콘서트 내일>에 히키코모리로 출연했을 때, 나는 사람이 시끄러운 장소에 탱크라도 밀어서 좀 조용하게 만들고 싶다고 답한 적이 있다. 사실 조금 과잉된 표현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의 수준으로 나는 혼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용무가 없는데도 사람들과 불필요하게 만나서 친목을 다지는 일은 아직도 어렵다. 나를 직접 만난 사람은 조금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막상 만나보면 말도 술술 잘 하는 데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겉으로 그렇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라는 개념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조금 더 유연하게 생활할 수 있는 지식을 얻었다. 그래서 특정한 목적이 있는 장소에서는 최소한의 역할을 통해서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거다.
표정은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더라도 속은 언제나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내가 말을 걸어야 하나?’ ‘아, 그냥 집에 가고 싶다. 괜히 여기 왔어.’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이런 생각은 불안감으로 이어져 항상 배를 아프게 하고,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거린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과 마찬가지로 학교와 집만 오가며 불필요한 관계를 위해 시간을 쓰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은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오프라인이 아니어도 되는 거다.
누군가에게는 손해 보는 인생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나는 손해 보는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관계 속에서 머리를 징징 싸매는 것보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이런 게 이상했지만, 요즘은 혼자 하는 게 트렌드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오타쿠이자 히키코모리증을 앓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지금은 ‘반히키코모리 오타쿠 블로거‘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는데, 이 말만큼 내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학교를 제외하면, 집에서 모든 시간을 거짓 보내고 있으니까.
나는 나 나름대로 성장하고, 내가 추구하는 길을 걷고 있다. 이번 <노지 생활 백서> 프로젝트에서는 내가 걸어온 길과 그곳에서 발견한 새로운 가치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부디 이 글이 혼자가 어렵거나 피해야 할 습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