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학에 다니면서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교실의 풍경과 공부 방법에 대해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한다. 대학교에 오면 좀 더 자유롭게 질문하면서 ‘성적’이라는 결과에서 벗어나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대학에 올라와서 본 한결 같은 풍경은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하기 충분했다. 좋은 학점을 받아야 취업하는 데에 유리하다고 하지만, 10대 시절을 공부 하나만을 위해서 나를 송두리째 포기했었는데, 대학에서 나는 그럴 수는 없었다.
물론, 이것을 학교 선생님을 탓할 수는 없다. 학교 선생님들은 매번 교육부가 지칭한 바대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게 선생님들의 의무다. 중‧고등학교 선생님과 비교하면 대학교 교수님은 비교적 자유롭다고 하지만, 대학의 취업률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러한 흐름에 저항하는 선생님은 교과서 외우기 방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제공한다. 예를 들면, 외국어 수업 같은 경우에는 딱딱한 교과서와 문제집만 보는 게 아니라 좀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많다.
공부가 단순히 시험을 위한 암기가 되어버리면 누구라도 금방 질리기 마련이지만, 그 과정에서 호기심을 유발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알 수 있게 하면 쉽게 질리지 않는다. 외국어 담당 선생님이 드라마, 영화 같은 콘텐츠를 이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고등학교 시절 한 일본어 선생님은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렇게 재미없는 방식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어 정말 미안하다. 선생님도 일본어를 공부할 때는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하는 게 더 재미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 선생님도 그렇게 공부했었고. 그런데 위에서 이런 책으로 가르치라고 하기 때문에 너희가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 가르치는 나도 재미가 없는데 너희가 재미있겠냐?”
당시 그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상당히 놀랐었다. 그동안 ‘재미없어도 해야 하는 게 공부다.’라고 말하는 선생님은 자주 있었지만, 재미없는 방식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어 미안하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은 우리가 일본어 수업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셨다. 그 분은 우리의 담임선생님이시기도 하셨는데, 그동안 본 성적으로 모든 걸 말하는 선생님과 달리 하고 싶은 일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목표를 정한 후에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당시 반 아이들은 엄격해도 담임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 선생님은 항상 수업 시간에 자거나 뒤처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늘 아이들과 호흡을 맞춰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대학에 들어와서 보면 이런 교수님이 더러 있다는 사실이 그마나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학교의 현실은 교실에 들어와서 칠판만 보고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도 있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과만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으며 성적에 따라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하는 선생님도 적지 않다. 결국, 교실은 낙오자와 성적 상위자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10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은 모두 가르치는 일 이외에도 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다. 대학 교수님은 자기 연구 분야의 일을 하면 되기 때문에 조금 부담이 덜할지도 모르지만, 중‧고등학교 선생님은 행정 업무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학교 폭력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을 때도 많은 선생님이 행정 업무가 많아서 사실상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교사들의 일과 시간 30% 정도가 비담임 업무라는 것은 우리 교육의 현실을 보여준다.
좀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은 학생들과 교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 학교는 일방통행이라 좀처럼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10대 시절에 우리는 대학에 가면 좀 더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대학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서울대 우등생들의 공부 방법을 밝히기 위한 연구 ‘베스트 러너 프로젝트’의 결과는 우리가 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과 지금이 똑같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좋은 학점을 받는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교수의 말을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필기를 하고, 이러한 필기를 바탕으로 강의 내용을 모두 완벽하게 암기하였으며, 수업에 대해 생각하고 분석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갖기보다는 수용적인 태도로 교수들의 생각을 흡수했다. 그런 결과 우수한 학점을 받았다.”
윗글이 베스트 러너 프로젝트의 연구 결론이다. 좋은 학점을 받는 학생은 모든 게 한쪽에서 한쪽으로 흐르는 방식으로 교수의 강의를 받아들였고, 그것을 달달 외워야만 했다. 과연 이런 게 진정 올바른 사람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재미없는 공부를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한다고 하는 한국. 그 한국에서 아이들의 마음이 무너지는 일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반복해온 학교 폭력 사건이 사회에서 그대로 유지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눈으로 직접 보아왔다.
하지만 변화가 필요한 학교는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학교의 풍경을 이해하는 것이 ‘학교 폭력’을 이해하고, 나와 같은 학교 폭력 피해자가 그 트라우마로 겪는 후유증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우리가 출발선에 서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