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는다는 건 흔히 말하는 ‘루저’가 되는 지름길이고,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힘든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선택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한국 사회에서 최소한 전문대라도 나오지 않으면 사람은 사람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한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재능이 있어도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은 조금 괜찮아졌다는 의견도 늘어났지만, 여전히 강한 인맥 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한국은 대학으로 연결되는 학연주의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이며, 한국 사회의 병폐로 연결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을 가지 않거나 대학을 도중에 멈추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대학을 가지 않고 막상 공무원 시험을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확률에 의존하는 치킨 게임이 되어버리고, 대학을 도중에 멈추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 중 하나로 여겨진다. 만약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아마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 않을까?
2011년쯤에 나는 어머니께 대학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는 바로 정색을 하시면서 “미쳤나? 대한민국에서 대학 안 나와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매일 니처럼 컴퓨터 앞에서만 주절거리는 놈이 뭐하려고 그카노?”라면서 경상도 어머니의 강한 어조로 나를 나무라셨다.
2011년 당시 블로그 주가가 올라가고 있던 시기인 데다가 블로그를 통해 꿈을 이루는 사람을 여럿 본 터라 나 또한 블로그를 통해 큰 꿈을 꾸고 싶었다. 대학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배우는 건 고등학교 수업과 시험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 줄 세우기 교육밖에 없었고, 간간이 있는 좋은 교양 과목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극구 반대를 하셨다. 한국의 현실이 절대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서 살아가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어머니께 말씀을 드리는 과정과 그 이후에 몇 번이나 고민을 해보았지만, 역시 대학을 선택하지 않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어머니가 이후에 하신 말씀대로 대학은 일단 졸업하고, 나중에 다른 길을 찾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대학은 공부의 연장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배우는 곳이다. 대학에 뜻을 품고 있는 사람이 대학 교육과 제도, 다양한 혜택을 십분 활용한다면 분명히 더 멀리 뛸 수 있는 도움닫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일단 대학은 졸업하고 보자는 방식이 많고, 대학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보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절대 우리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나오더라도 공허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다시 고시촌으로 돌아가 공무원 시험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부지기수다. 대학은 우리 인생의 보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나은 투자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불확실하게 소비해버리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은 수많은 갈림길 중 고작 하나에 불과하다.
오래 전에 김난도 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스탠퍼드 대학의 교육을 말하는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읽으면서 나는 대학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죽어도 나와야 하는 곳이었지만, 이미 더 나은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과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있는 사회에서는 많은 선택지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평범한 길은 누구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향을 택하거나 남과 다른 방식을 시도해볼 때, 세상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의문을 품을 때 흥미로운 결과와 뛰어난 성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안전한 길에 머무르는 것이 물론 더 쉽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바꿔보면, 우리 바로 앞에 기다리는 놀라운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깨닫게 될 것 이다.
놀라운 기회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른 형태로 찾아온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가한 제약이라는 뚜껑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잠재력을 믿을 때에만 기회가 온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기대치만 충족시키는 것을 뛰어넘어야 하고, 당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당신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다. 따라서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 한 번뿐이 삶을 내가 원하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이 주는 기회를 받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대학은 우리 사회가 원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되었고, 우리는 그 조건을 채운 이후에도 꾸준히 사회가 원하는 토익과 유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스펙을 충족시킨 다음 비로소 사회에 우리의 이력서를 내민다.
그런데 이미 우리가 이력서를 낼 때는 “그동안 취업 안하고 뭐했어요?”라는 차가운 질문이 돌아오고,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하느라 학점이 좋지 않으면 “대학 생활에 놀았어요? 학점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라는 억울한 질문이 돌아온다. 어쩌면 우리는 대학이라는 것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며 오늘을 소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은 자신이 시도해보지 못한 일이다. 인간이 혀로 하거나 글로 쓰는 모든 활동 중에서 가장 슬픈 것은 “그랬을 수도 있는데….”라는 말이 있다. 죽도록 노력해서 평범해지기 위해서 모두가 가는 대학을 따라서 가고, 모두가 가지는 여러 자격증과 여러 시험을 쳐서 고득점을 획득하고, 그런데 내 인생을 위한 도전은 왜 하지 않는 걸까?
20대에 들어서 대학을 다니다가 대학을 자퇴를 고민했던 이유는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니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만약 자신이 대학에 가는 목적이 자신의 꿈이 아니라 일단 다녀야 한다고 생각해서 가고 있다면, 지금 잠시 멈춰서 내가 대학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스스로 물어보는 건 어떨까?
대학은 자질한 것보다 좀 더 나은 삶을 고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누구나 다 대학에 가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그냥 ‘남들이 다 가니까.’라는 이유로 가기에는 그 시간과 비용이 너무나 아깝다. 성적에 맞춰서 온 대학이라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온 대학이라도, 그 대학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으로 우리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당신이 하는 일과 공부에 당신이 품은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