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노지 생활 백서
사람의 인생에는 어려운 고비가 반드시 찾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어려운 고비를 맞닥뜨릴 때, 그 어려운 고비를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작은 빛도 함께 있다고 한다. 그 빛을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어려운 고비를 넘어서 한층 더 성장하지만, 그 빛을 손에 쥐지 못한 사람은 어려운 고비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좌절을 해버리고 만다. 우리의 인생은 단순하지 않지만, 단 그 갈림길에서 웃음과 눈물이라는 두 개의 결말을 향해 가게 된다.
나도 어렸을 때에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도 그랬었고, 지금도 그랬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은 절대 곧은 길이 될 수가 없다. 언제나 가시밭길을 가야 하는 것이 삶을 산다는 것이고, 넘어져서 무릎이 까여서 피가 나는 게 바로 인생을 산다는 것이 아닐까. 겨우 25살인 내가 인생을 논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나는 그렇게 25년을 살아왔다. 아니, 겨우 살아남아서 조금씩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나는 블로그에 ‘내가 오타쿠에 히키코모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라는 제목으로 나의 과거사에 대해 짧게 글을 적은 적이 있다. 그 글 덕분에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KBS 프로그램인 <지식콘서트 내일>에 일시적인 출연을 할 수 있었고, 좀 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어떤 사이트의 표적이 되어 상당히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지만, 그 경험은 내가 한층 더 강해질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그 글을 썼을 때와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2011년에 쓴 <내가 오타쿠에 히키모로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읽어보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조금은 더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숨 쉴 수 있게 된 것은 커다란 진보이지 않을까? 더는 항우울제에 의존하지도 않고 있고, 몇 가지 손에 들어온 기회를 움켜잡은 채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으니까. 이건 내게 있어 아주 큰 진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는 최근에 크게 감동하며 본 <4월은 너의 거짓말>을 보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 '애니메이션과 내 인생'에 대해 글로 짧게 정리해보고 싶었다. 2014년도 이번 12월이 마지막이니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내 인생을 되돌아보며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내가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 직접 적는 건 아주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했다.
내가 제일 처음 본 애니메이션은 무엇이었는지 지금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조금씩 철이 들면서 내가 기억하는 애니메이션 중에서 기억하는 애니메이션이 두 편이 있다. 바로, <카레이도 스타>이라는 애니메이션과 <달빛천사>이라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두 애니메이션은 힘들었던 시절의 내게 큰 힘이 되어준 애니메이션으로, 그저 회색빛의 시간을 아무런 의미조차 부여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내게 색을 최초로 넣어준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카레이도 스타>와 <달빛 천사>의 이야기는 모두 주인공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대게 많은 애니메이션이 그렇듯이, 주인공은 연거푸 시련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시련을 이겨내면서 훌륭히 자신의 길을 관철해나간다. 지금 보면 그저 흔한 애니메이션의 이야기이지만, 중학교 시절의 나에게는 정말 어둠 속에서 내려온 한 줄기의 빛과도 같았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울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보았다.
이 두 애니메이션을 계기로 나는 꿈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고, '나도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나도 꿈을 꾸며 빛날 수 있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웃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학교와 학원에 다니면서 하는 공부에는 조금 소홀해지면서 성적은 내려가게 되었지만, 이때 나는 여러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른들이 만들어 준 울타리 안의 세상이 아니라 울타리 밖의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절대 사람이 쉽게 이루게 해주지 않는다. 꿈을 꾸게 했다면, 꿈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도 바로 세상의 일이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 더 편하게 학교생활을 하게 되면서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을 잠시 잊어버렸었다. 당시에도 책을 꾸준히 읽었지만, 당시에 읽었던 책들은 지금 내가 직면한 가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스스로 나를 위로하기 위한 책들이 많았다. <마시멜로 이야기>와 <톨스토이 이야기>, <연탄길> 등이 대표적인 책이었다.
꿈을 잠시 잊었기 때문일까?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저 열정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애초에 내가 모자랐기 때문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첫 번째 수능 시험을 쳤다. 그저 모두가 치는 시험이라는 이유로 시험을 쳤고, 당시에 인터넷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스타 강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뒤늦게 부랴부랴 '좋은 대학을 가자!'라는 목표만으로 공부했었다. 하지만 동기부여가 약했던 나는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성적이 오르고 있는 도중이니 내년에는 더 잘 칠 수 있을 거야.'이라는 생각으로 고집을 피우면서 재수를 했다. 재수를 통해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겪은 가정불화와 함께 스트레스, 공부에 좋지 않은 환경 등은 단순한 변명 거리이니 이야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 집의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건 이미 내가 유치원에 다녔을 때부터 보았던 풍경이니까. 그저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강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실패를 했다. 세 번의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내 동기부여가 부족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꿈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에 갔다. 대학에서 크게 배운 것은 없었고, '이 사회도 썩었다'는 것을 느끼게 했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 가장 좋은 것을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블로그'였다. 블로그를 통해 나는 좀 더 다른 길을 꿈꾸게 되었고,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만난 애니메이션은 일본에서 오래 전에 방영되었던 <ef, a tale of memories>이라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주인공들이 꿈을 찾아 방황하면서, 그 꿈에 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상처를 입으면서 아파하고, 넘어지고, 넘어지고… 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모두 저마다 자신의 길을 훌륭히 찾아 나갔고, 아직 꿈을 이루기는 멀지만… 그래도 내일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당당히 걸어 나가는 모습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볼 때 나는 정말 펑펑 울면서 보았었는데, 아마 당시에 내가 직면하고 있던 여러 상황이 너무 들어맞아 심하게 감정 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는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여운이 남았고, 그 이후에도 종종 내가 걸어가는 길이 힘들다고 생각할 때마다 다시 한 번 더 보고는 했다. 애니메이션에서 들을 수 있었던 짧은 문장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누구라도 한 번은 신에게 소원을 빈 적이 있다고 생각해.
설령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올곧은 마음으로 소원을 빌 날이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거야.
누구든지 찾고 있는 것.
누구든지 원하고 있는 것.
반복되는 마음과 그 사람들의 인연이 만들어내는 그 뒤에 있는 것은
꿈…….
덕분에 나는 중요한 시기에 다시 한 번 더 중심을 잡을 수 있었고, 책을 더 많이 읽는 것만이 아니라 블로그에 기록하면서 다른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때 블로그에 기록하는 글은 내 작은 일상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내가 생각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 내가 겪은 학교의 이야기, 내가 읽은 책의 이야기, 내가 본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내가 아파하는 이야기, 내가 찍은 사진 이야기, 등 소박한 사는 이야기 등이었다. 정말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점점 그 즐거움을 잊어가고 있는 내게 다시 한 번 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이 애니메이션을 접하기 전에도 많은 책을 통해 '나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한다.' 하고 생각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왜 나는 이 일을 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의미를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나는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사용하는' 때도 있었다. 나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이라는 생각만으로 기계적으로 글을 쓰는 일을 했다.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이라는 블로그는 그런 블로그였으니까.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좀 더 다른 기분으로 운영할 수 있는 <미우의 소박한 이야기> 블로그를 개설해서 내가 좋아하는 라이트 노벨과 애니메이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4월은 너의 거짓말>을 본 이후에 나는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을 좀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블로그는 내 공간에서 내 마음을 담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글을 적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비록 내가 부정적이라 언제나 부정적인 글을 만힝 쓰기도 했다. 그래도 '이 이야기는 글로 쓰고 싶다.'는 기분이 들 때마다 늘 노트에 메모를 날려 쓰고 나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게 20대 중반을 보내는 나의 즐거움이었다.
다시 단조로워지는 일상에 나는 작은 도전을 하기로 지난 14년 10월 말에 결심했다.
그 도전은 바로 '피아노를 배우는 일'이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도 힘으로 치는 내가 피아노 학원에 간다고 해서 금방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피아노를 치면서 한 곡, 한 곡 칠 수 있게 될 때마다 즐거워하고 있다. 종종 '더 빨리 배워서, 더 빨리 익혀서, 내가 원하는 곡을 치고 싶다'는 조바심을 내기도 했지만, 애니메이션 <4월은 너의 거짓말> 덕분에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한때는 삶을 포기하고 싶기도 했었고, 몇 년 동안은 항우울제를 먹으면서 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중요한 고비마다 애니메이션은 내게 웃을 수 있는 가장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내가 꿈을 가슴에 품을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런 나라도 웃을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해주었고, 이런 나라도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애니메이션 덕분에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블로그도 운영하게 했다.
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느낌 없이 전달될지도 모르고, 전달조차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 나를 괴롭혔던 녀석들은 여전히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처한 여러 가지 위기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으니까. 대단하게 빛나고 있지는 못하지만, 희미하게 반짝이면서 밤하늘을 수놓은 하나의 별이 되는 과정을 걸어가고 있으니까. 내 발걸음에 약간의 즐거움이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앞으로 더 웃을 수 있는 일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희미한 반짝임이 더 큰 반짝임으로, 그리고 작은 행복이 더 큰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누가 나를 믿겠는가. 애니메이션의 모든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 때때로 세상은 너무 잔인한 채찍질을 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서서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다. 그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까.
오늘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저 지금 웃기 위해서, 내일도 웃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