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전투와 충돌의 연속이다. 당신은 불리한 상황과 파괴적인 관계와 위험한 일들을 끊임없이 맞닥뜨린다. 이러한 난국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걸졍된다. 크세노폰이 말한 바와 같이, 당신의 장애물은 강이나 산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다. 장애물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란에 빠져 있다면,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면, 동지와 적을 구별하지 못하겠다면, 스스로를 책망해야 한다. (로버트 그린, 전쟁의 기술)
흔히 입시 전쟁과 취업 전쟁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는 자주 사용한다. 즉,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전쟁을 반복해야 하는 전쟁터인 것이다.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이라는 책은 내가 진정한 의미로 자아를 형성할 때 읽은 책이다. 보통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아를 가지고 있고, 사춘기를 겪으면서 '나'라는 정체성을 형성해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겪는지도 몰랐던 사춘기에는 '나'라는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 도저히 없었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학교 내에서 빈번히 당한 크고 작은 괴롭힘에 대처해야 했고, 기대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어른들의 기대치를 채우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했다. 아무리 내가 이전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도 '왜 그것밖에 안 되니?'라는 어른들의 말 앞에 나는 거짓말을 하면서 결과를 부풀렸고, 그런 짓을 반복하다가 공부라는 것에 아예 맥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나는 입시라는 전쟁터에서 사기를 잃은 병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공부가 재미없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중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수학 문제 푸는 것을 그 무엇보다 좋아했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수포자가 되어버린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만, 공부를 한 번 손에서 놓아버리면 다시 시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열심히 해도 부족한 수학 공부를 건성건성하다 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학과 사회문화와 정치 등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해야 할까?
당시에도 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면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불합리한 문제'를 생각했다. 눈 깜짝할 새에 고등학교는 졸업식을 맞이했고, 나는 아직 '나'라는 정체성을 똑바로 형성하지 못한 어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기 전에 다시 한번 '학교'라는 이름이 붙는 대학교에서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내가 가진 유일무이한 배움의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입시에 실패해서 들어간 대학은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저 흥미 하나로 선택한 일본어는 고등학교 수업 진행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었고, 작은 흥미로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과정은 무척 힘이 들었다. 다행히 나는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블로그를 만났고, 블로그에 콘텐츠를 연재할 목적으로 다시 책을 부여잡게 되었다. 그때 만났던 책이 바로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이라는 책이다.
<전쟁의 기술>에서 읽은 문장 하나하나는 나에게 놀라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나'를 형성해나갈 수 있었다. 그동안 의욕이 부족했던 나의 문제점을 항상 불행한 가정 환경, 학교 폭력이라는 불행항 사고 등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달라질 수 없다.'라며 크게 내 삶에 기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나의 내면에 내재해 있는 그러한 악에 제대로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로버트 그린은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인생은 인간의 내면에 내재해 있는 악과의 전쟁이다."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내면에 내재해 있는 악은 증오, 분노 같은 타인을 향한 분노만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 내재해 있는 악은 열등감, 자기혐오, 자괴감 등 자신을 갉아먹는 감정이기도 하다. 이런 감정에 대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기력할 수밖에 없고, 나 스스로 그 어떤 무엇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장애물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는 문장을 곱씹으면서 나는 나를 들여다 보았다. 도대체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하면서 무엇을 하고 싶어서 살았는지 비로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인생을 똑바로 살지 못하는 것은 어디까지 내 책임이다. 주변 상황이 아무리 최악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을 타개하고자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었다.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건 '부족한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끊임없이 나를 마주하면서 혹시 내가 나를 막아서고 있는 건 아닌지 묻는다. 이 질문에 "그렇지 않다."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아직 나는 "그럴 지도 몰라."라는 애매한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예전과 비교하면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고쳐야 할 모습과 더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로버트 그린은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전투 직전 상황이라고 생각하라. 모든 것이 마음 먹기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관점을 한 번만 달리해보면 당신은 수동적이고 혼란했던 용병에서 동기가 충만한 창의적인 전사로 탈바꿈할 수 있다."
항상 같은 각도에서 보면 같은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 나의 단점만 바라보면 끊임없이 자존감은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나의 장점을 바라보면 자존감은 높아지고,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의욕이 충만한 사람이 된다. 어릴 적의 나는 항상 단점만 바라보며 '이렇게 된 것은 주변 환경 탓이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단점만 바라본 내가 문제였다.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자기 혐오로 변해서는 안 된다.
이제야 나는 그래도 웃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만약 대학에 올라와서 <전쟁의 기술>을 다시 펼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내 책임인지도 모른 채 남탓만 하며 엉망인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