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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한 시간

프롤로그

by 덕후 미우

얼마 전에 블로그 활동을 통해서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라는 책을 만났다. 그 책은 젊었을 적에 자신이 기록한 명언집을 우연히 발견한 저자가 그 명언집에 세월이 흐른 동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을 덧붙이면서 출판한 책이다.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의 부제는 '그때그때 나를 일으켜 세운 문장들'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식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실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블로그에 적은 글을 돌아보면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의 저자가 쓴 글과 상당히 비슷했다. 나는 항상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단순히 책을 요약한 글'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본 나의 삶'을 끌어와서 글을 썼다. 어떤 문장에서는 왜 내가 이 문장에 끌렸는지 이야기했고, 어떤 문장에서는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책을 읽고 쓴 글은 두 개의 블로그를 합쳐서 약 2,135편 정도가 된다. 이 글들 중에서 전문 독서가가 말하는 필독서와 인문 고전은 별로 없다. 흔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하면 보통 베스트셀러와 함께 전세계 공통으로 인정하는 인문 고전을 몇 권 읽었는지 물을 때가 많다. 인문 고전의 가치를 나도 인정하지만, 나는 내가 재미있게 읽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을 읽고자 했다.


2,135편의 글 중에서 1,350편의 글은 라이트 노벨과 만화책이다.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작인 라이트 노벨과 만화책에 관심을 두었고, 나이를 먹어도 꾸준히 라이트 노벨과 만화책을 읽고 있다. 한국에서는 '라이트 노벨과 만화책도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거뜬히 일반 도서를 판매 부수로 이기고 있는 책들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 읽기에 빠지게 된 것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고 난 이후 소설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읽는 재미를 알게 된 것은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라는 라이트 노벨을 읽은 이후였다. 소문난 서평가와 비평가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격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라이트 노벨이라고 해서 마냥 오락 소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주인공의 이야기 속에서 깊은 고찰을 발견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통해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제일 먼저 내가 재미있게 책을 읽기 위해서다. 아무리 인문 고전이 유익한 책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재미있게 읽지 못한다면 과연 그것이 좋은 독서일까? 종종 유명한 강사와 저자들은 '어려워도 인문 고전을 한 권 다 읽고 나면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책 앞에서 머리를 싸매는 것보다 재미있는 책 읽기를 하고 싶었다.


약 1,350편의 라이트 노벨과 만화책을 읽는 동안 만난 약 785편의 인문학, 경제학, 자기계발, 에세이, 소설 등 다양한 책은 그 가치를 따로 구별할 필요성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라이트 노벨과 만화책보다 더 야한 묘사가 평범한 소설 속에서 그려지기도 했고, 평범한 소설과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더 고민해볼 만한 이야기가 라이트 노벨과 만화책에서 그려지기도 했다. 이미 이 작가들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있다.


오늘 이렇게 새로운 글을 쓰는 계기가 된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 책 표지를 보면 "우리는 너무 급하게 인생의 정답을 찾으려 한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조금 바꿔서 "우리는 너무 책의 표면만 보면서 급하게 정답을 찾으려 한다"고 말하고 싶다. 비록 두껍고 누구나 명작으로 인정하는 인문 고전은 아니더라도, 어느 책이나 내가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던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왔다. 책을 읽는 동안 공부를 소홀히 한 적도 많아 성적이 떨어진 적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함께 적은 글은 성적보다 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이 글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취업과 진로 설계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공부하느라 바빠서 다른 걸 할 시간이 없었어요."라는 말 대신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도…."라고 자신있게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의 저자는 자신이 지금껏 수빚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간단한 철학 격언들을 각 문구에 주석을 덧붙여 내놓기로 결심한 덕분에 책을 모두에게 공유할 수 있었다. 나는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를 읽으면서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도안을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한 내가 만난 책들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해 모두와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에는 '20대의 나를 지탱한 책들'과 '20대의 나를 지탱한 문장들' 사이에서 제목을 고민했다. 지금까지 책을 이용한 에피소드로 몇 권의 전자책을 발행하면서 나만의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책을 앞으로 내세우는 게 아니라 2~3 문장 정도를 낲으로 내세워 내 이야기를 조금 더 길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그 책의 그 문장을 읽은 이후 나는 수 년 간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가 생겼으니까.


나는 지금도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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