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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Jul 24. 2015

그냥 울컥해지는 말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세요'

내가 좋아하는 소설 라이트 노벨에는 항상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언제나 '行ってらっしゃい。(다녀오렴.)'과 '行ってきます。(다녀오겠습니다.)'이라는 말이다.

그저 평범한 인사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읽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울컥해지고 만다.


오늘(7월 21일) 읽은 <하루 100엔 보관가게>에서도 이 말이 나왔다.

평범한 인 시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에는 약간의 힘을 주는 대사였고, 나는 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여자아이는 가방에서 토끼 귀가 달린 분혼색 지갑을 꺼내 500엔 동전 하나와 100엔 동전 둘을 주인의 손 위에 올려놓았어요.

주인은 손가락으로 동전을 확인하고 말했어요.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찾으러 오셔도 돈을 돌려드리지 않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찾으러 오지 않으면 보관품은 제 것이 됩니다. 괜찮으신가요?"

여자아이는 "네" 하고 대답하며 가방을 멨습니다.

"잘 다녀와요."

주인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고 한참 주저하다가,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며 나갔습니다.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서서히 작아지더니 사라집니다. (p11)


너무 평범한 이야기임에도 눈물이 맺힌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울컷해진 내 마음을 향해 '왜 넌 자꾸 울려고 하니?' 하고 물어보았다.

이윽고 나는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언제나 내가 이 말에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알았다.


그 이유는...

"잘 다녀와요."이라는 말과 "다녀오겠습니다."이라는 말이 가진 온기였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힘이 담긴 두 인사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아파진 것이다.


평소 혼자 있다고 외롭다고 크게 생각한 적이 없고,

평소 혼자서 밥을 먹거나 혼자서 어두컴컴한 집이 슬프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내가 이런 따뜻한 온기를 책과 애니메이션에서 느낄 때마다 우는 이유는 왜 일까?


하아, 나도 내 감정을 잘 모르겠다.

그냥 울고 싶어 지는 날에 울고 싶고, 고함치고 싶는 날에 고함치고 싶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다. 누군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래서 나는 책에서 읽는 이런 따뜻함은 부러우면서도 슬프다.

그리고 그 감정을 현실에서 찾게 되면 내가 아니게 되기 때문에 부정한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렇게 살아간다.


".........."


책을 읽으면서 남한테 말하지 못하는 한 가지 습관이 있다.

나는 언제나 밖에 나갈 때마다 아무 말도 없는 내 방을 향해 "行ってきます。"하고 말한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올 때도 아무도 없어도 "ただいま。(다녀왔습니다.)"하고 말한다.


한국인이 왜 일본어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인사를 할 때에는 왠지 모르게 일본어가 더 익숙하다.

그리고 이 말에 온기를 느꼈던 때가 일본 소설이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한국어로 이런 인사를 건네는 일은 어렵다.

왜냐하면, 인사를 하거나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나 일본어로 말하면 상상 속의 인물이 대답을 해주는 것 같다.


종종 내 방의 피규어들이 마음을 가지게 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분명히 "行ってきます。"이라는 인사에 "行ってらっしゃい。"하고 답해줄 것이다.

그저 작은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아침 인사를 그녀들에게 건넨다.


"おは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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