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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Oct 22. 2018

휴식

만약 오늘 내가 아무 일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하루를 쉰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많은 사람이 하나 같이 목소리를 내며 "미쳤어? 네가 애야? 의욕이 없다고 하루 쉰다고? 아이구, 팔자 좋네. 누구는 쉬기 싫어서 일하나?"라는 식으로 비판을 할 것이다. 굳이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쉬는 일이 마치 죄인 듯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일은 사회인으로서 마땅히 챙겨야 할 미덕이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의 마음은 그런 규칙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상태가 될 때가 있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 증상을 갑자기 겪는 일과 비슷하고, 마음의 스위치가 꺼져 아무리 애써도 다시 켜지지 않는 상태가 그렇다. 살다 보면 이런 날을 가끔 한두 번씩은 겪기 마련이다.

그때 휴식을 취하지 않고 억지로 머리를 풀어헤치며 일을 하면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 만큼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쌓인 스트레스는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사람에게 풀어버릴 때가 많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면 미친 듯이 후회하면서 '내가 미쳤지. 도대체 왜 그렇게 한 거야?'라며 머리를 벽에 쿵쿵 박으면서 자책한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일 중 하나다.

나도 매번 오늘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 A1~A3까지 적어놓고, 하고 싶은 일을 B1~B3까지 적어놓고, 안 해도 상관 없는 일을 C1~C3까지 적어놓고 하루를 준비한다. 하지만 가끔 이런 순위에서 벗어나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될 때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할 일이 될 때가 있고, 안 해도 상관없는 일이 더 구미가 당겨 그 일을 먼저 할 때도 있다. 분명히 머릿속으로 정리한 과정과 다른 방식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거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하더라도 상황은 그때그때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하루는 평소 철저하게 지킨 스케줄을 모두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그때는 누가 비판을 하더라도 일단 최소한의 일만 한 이후 휴식을 취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돌연히 찾아온 무기력 상태는 우리가 억지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로지 적절한 휴식만이 우리가 돌연히 찾아온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가끔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가끔 술을 마시고 싶을 때도 비슷하다. 그때는 일부러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쌓였던 잠을 즐기거나 조용히 다른 세계로 빠질 수 있는 책을 읽는 일이 최고다. 담배와 술은 몸에 너무나도 해롭다. 만약 어쩔 수 없이 꼭 한 번은 그런 일을 해야 하겠다면, 담배보다 가벼운 과일주를 사서 마시는 일을 나는 추천하고 싶다. 과일주가 가진 소량의 알코올은 평소 술을 하지 않는 사람이 짧게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스위치가 되기도 한다.

몸과 마음이 지금 당장 쉬고 싶다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날에는 나를 채찍질하며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정말 그대로 쉬어보자. 조금만 쉰다면 우리는 금세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다. 그 짧은 시간이 아까워서 나를 몰아붙이기만 한다면, 기어코 몸과 마음이 무너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잠시나마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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